청춘만의 특권, 워킹홀리데이
청춘만의 특권, 워킹홀리데이
  • 이종민(국제경영·3)
  • 승인 2018.04.03 15:24
  • 호수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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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점 걱정, 취업 걱정뿐인 캠퍼스에서 내게 낭만은 없었다. 졸업 후에 부모님 도움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이 나를 옭아맬 뿐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과감한 결심을 내렸다. 바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한 것. 집에서는 극구 반대였지만 결심을 세운 나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학기 중 어렵사리 워홀 비자 신청에 성공했고, 2016년 9월 5일, 홀로 뉴질랜드로 떠났다. 워홀을 가서도 나태해질까 두려워 딱 현금 70만 원만을 챙겨갔고, 도착 다음 날부터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력서 100장을 돌려도 돌아오는 것은 문전박대뿐. 또 일자리를 잡아도 최소한의 계약조건마저 지키지 않으려는 곳이 태반이었다. 몇 주가 지나자 돈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조급함이 몰려왔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닌데……. 포기하고 돌아갈까 고민하며 한국행 비행기 표를 찾아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 번뿐인 기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면접제의가 왔고 나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면접을 봤다. 그 뒤 그토록 기다리던 합격. 이후 나는 한 달 동안 견습생이 됐다. 어렵사리 얻은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손목이 욱신거릴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지역 매니저의 눈에 띄어, 나는 일 시작 한 달째 되는 날 새로 론칭한 매장의 매니저로 승진하게 됐다. 매니저가 된 뒤에도 일은 고달팠고, 해야 할 일은 더 많았지만 힘겹게 얻어낸 자리였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렇게 워홀 기간이 끝나갈 즈음, 나는 본사로부터 보너스를 받을 만큼 인정받는 직원이 돼 있었다. 이후 나는 사임을 하고 그간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 계획해뒀던 모든 일을 실천했다. 남섬으로 떠나 헬리콥터를 타고 빙하를 보고, 고급 크루즈로 밀포드 사운드의 아름다움을 즐겼으며, 와나카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134m 번지점프까지 하며 정말 멋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약 1년에 가까운 시간 내가 알지 못한 세상 속, 두려움과 걱정만 가득했던 세상 속에서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지금 너무 힘들고 고달픈가? 그렇다면 나처럼 무작정 떠나는 길도 있다. 물론 그 현실도 힘들다. 하지만 인생에 한 번 뿐인 청춘, 그 청춘의 특권을 놓치며 후회하기보단 일단 부딪혀보기라도 하는 것이 더 나은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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