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라는 이름에 쓰인 빨간색 벗겨내기
‘노동’이라는 이름에 쓰인 빨간색 벗겨내기
  • 김한길 기자
  • 승인 2018.05.15 22:08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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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기획부장
김한길 기획부장

51일은 근로자의 날인가 노동절인가. 근로자의 날이건 노동절이건 그냥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주는 날아닌가. 안 그래도 복잡해 죽겠는 세상, 왜 사람들은 같은 날을 굳이 다르게 부르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언어 논쟁에는 우리가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문제가 달려있다.

 

언어학의 아버지 소쉬르는 언어 기호는 기표기의로 나눠진다고 말했다. 기표란 단순하게 언어, 기의란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을 말한다. 기표는 기의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리고 기표는 사회가 정한다. 즉 기표를 정하는 문제는 사회가 기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직도 51일의 기표를 정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이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이 문제가 책상을 책상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라고 불렀다. 근로(勤勞)의 사전적 정의는 부지런히 일함이다. 다시 말해 일하는 사람들에겐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었다. 근로라는 기표가 있는 한 노동자의 생존권이나 합당한 임금 같은 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과거에 일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노동자를 근로자로 불러왔던 탓에 아직까지도 우리는 노동자보다는 근로자라는 기표가 더 익숙하다. 심지어 노동자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실제로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꿔 불러야한다는 기사의 댓글에는 왜 굳이 근로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왜 굳이 노동이라는 단어를 쓰냐는 댓글이 있었다. 뒤이어 귀족노조, 좌파, 빨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노동에 대해 말하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이념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이념적인 거부감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경제발전시기에 한국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암담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기본생활조차 힘든 쥐꼬리 임금에 노동자들은 노동환경의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경제발전을 방해하는 좌파세력이라는 붉은색 낙인이었다. 이 붉은색 낙인은 근로자라는 기표가 노동자라는 기표로 수정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했다.

 

지난 1일 광장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은 좌파단체도 빨갱이도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나라 경제를 망치지도 않았고 북한이 좋다고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과 노조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헌법으로 이미 보장돼있는 상식적인 요구들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에는 이념적인 비난이 여지없이 득실댔다. 노동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또 우리는 이념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산다. 그동안 노동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졌다면, 노동이라는 말에 덧씌워진 억울한 빨간색을 지우고, 근로라는 말 대신 노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김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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