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왕의 아내, 왕의 주치의 ⑥ 덴마크 크리스티안 Ⅶ세
왕, 왕의 아내, 왕의 주치의 ⑥ 덴마크 크리스티안 Ⅶ세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5.15 22:28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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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인어공주, 탄탄한 복지와 교육 시스템, 행복한 나라 하면 떠오르는 덴마크에는 한때 왕 대신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주치의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외국인 주치의는 덴마크에 개혁의 바람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17491, 우리의 첫 번째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이 태어났습니다. 덴마크 왕실의 후계자였던 이 어린 왕자님은 3살에 어머니를 잃고 아들에게 별 관심이 없던 아버지를 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게다가 왕자의 교육을 맡은 공작은 강한 왕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는 핑계로 아이를 혹독하게 학대하여 평생을 가는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습니다.

▲ 알렉상드르 로슬랭. '크리스티안 Ⅶ세' , 1718년
▲ 크리스티안 샤르트만, '크리스티안 Ⅶ 세의 궁전풍경' , 1873

 

강한 남자가 돼야 한다는 집착에 빠진 크리스티안은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과 함께 못된 짓만 골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를 배회하다 가시 박힌 몽둥이로 무고한 행인을 폭행하는가 하면 홍등가를 전전하기도 했죠. 그런 와중에 선왕이 사망하고 크리스티안이 왕위에 올랐으니 덴마크의 장래는 어두워 보이기만 했습니다.

 

17살짜리 왕의 행실에 경악한 신하들은 결혼하면 정신을 좀 차리지 않겠는가 싶어 영국의 캐롤라인 공주와 결혼을 시켰지만, 왕은 요즘은 자기 부인을 사랑하는 것이 유행이 아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며 캐롤라인을 멀리했습니다. 초조해진 신하들이 왕이 남자다움에 집착하는 점에 착안하여 후계자가 없으면 국민들이 왕을 성적 불구라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한 뒤에야 아내와 함께했을 정도였죠. 이때 태어난 아이가 훗날 왕위에 올라 프레데리크 6세가 됩니다.

 

성인이 된 크리스티안의 행동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정신병을 앓고 있음이 확연해졌고 이는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되기 시작했죠. 점차 나빠지는 국내 여론을 피해 유럽여행을 떠났던 왕은 독일인 주치의, 슈트루엔제를 데려와 총애하였습니다. 계몽주의적 사상가인 슈트루엔제에게 있어 자신을 철저히 신뢰하는 왕의 총애는 꿈에도 그리던 기회였습니다. 왕의 정신이 점차 흐려지는 동안, 주치의는 추밀원 장관이 되었고 나라는 점차 주치의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열여덟 어린 왕비의 마음도 잘생기고 상냥한 주치의에게 넘어가 조심성 없이 행동했습니다. 그러니 얼마 후 태어난 공주를 두고 사람들이 주치의를 닮았다며 수군거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죠. 세상 사람들은 이 관계를 경계했지만 정작 왕, 왕비, 왕의 주치의, 이 셋 사이에서는 기묘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 크리스티안 샤르트만, '크리스티안 Ⅶ 세의 궁전풍경' , 1873
▲ 알렉상드르 로슬랭. '크리스티안 Ⅶ세' , 1718년

 

주치의가 왕 대신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니 국민들이 고통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겠지만 놀랍게도 사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정신병에 고통받는 왕이 아닌, 계몽사상을 가진 의사가 다스린 덕분에 덴마크는 많은 발전을 하게 됩니다. 슈트루엔제가 다스린 1년 간 고문, 강제노역, 노예 매매, 언론 검열 등이 폐지되었고 귀족의 특혜가 사라졌으며 뇌물이 철저히 금지되고 대학과 군대가 개혁되었습니다.

 

슈트루엔제가 가져온 변화 중 일부만 읽어도 누가 그의 적이었을지 짐작이 가시죠? 귀족들은 주치의를 없애버리고 싶어 이를 갈았고 결국 왕의 침실에 쳐들어가 왕에게 슈트루엔제를 체포하는 서류에 서명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결국, 슈트루엔제는 오체분시형에 처했으며 왕비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3년 뒤 병에 걸려 23살에 사망하였습니다. 크리스티안 7세는 왕위에서 물러나 살다가 59살에 발작으로 인해 사망하였죠.

 

강한 왕을 키우기 위한 압박감 속 학대에 시달렸던 크리스티안, 연인과의 소박한 삶을 꿈꿨던 캐롤라인, 왕이었다면 성군이라 불렸을 슈트루엔제의 이야기는 스스로 일궈내는 삶이 아닌 신분제가 주는 삶에 맞춰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주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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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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