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도둑과 취향나치
취향도둑과 취향나치
  • 『후 이즈 힙스터?』 저자 문희언
  • 승인 2018.05.15 22:26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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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즈 힙스터?

1980~1990년대 생은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거라고 한다. OECD의 발표에 따르면 2012년 34개 회원국의 상위 10% 평균 소득은 빈곤층 하위 10% 평균 소득의 9.6배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은 2013년 기준 10.1배로 OECD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국의 힙스터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던 시절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외국 문화를 쉽게 접하며 자랐고,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등 부모 세대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없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도 부족하다. `2016년 비정규직 노동통계’에 따르면, 20대의 20%가 비정규직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봉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본인이 가진 적은 돈으로 가능한 큰 만족을 느끼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미 인증된 ‘멋지고 힙한 곳’을 찾아간다. SNS에 올려 ‘내 취향이 이렇게 좋다’, ‘이런 것도 먹었다’, ‘이런 곳에 가서 전시회를 봤다’는 식의 보여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국에서 힙스터란 ‘맛집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전시회나 공연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젊은이들’이 돼버렸다. 힙스터라는 말은 그 자체로 ‘홍대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철없는 20대’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누구나 쉽게 비난하고 비웃을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현재 한국 젊은이들은 본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본이 없다. 그래서 ‘사소한 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타인과 ‘구별짓기’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힙스터가 ‘(~에 대한) 자부심’정도로 희화화되기도 하지만, 사실 힙스터는 문화계급이다(소비층이라고 하기에는 한국의 젊은이는 돈이 너무 없다). 그래서 적은 돈으로도 소비할 수 있으면서, 다른 계급과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소소한 문화생활’에 집중하게 된다. 또 ‘나만 아는 브랜드, 밴드, 가게’같은 것들이 소중한 가치가 되지만, 나 ‘혼자서만’ 알면 타인에게 인정받기 힘들어서 이런 취향을 공통적으로 소유한 소수의 무리가 필요하다.


나보다 문화적으로 ‘하위계급’에 속하는 국내 SPA 브랜드의 옷을 살 법한 일반 대중이 ‘나만 아는 브랜드, 밴드, 가게’를 찾게 될 때 한국 힙스터는 한때 자신의 취향이었던 그것을 버리고 다른 브랜드, 밴드, 가게로 떠난다. 환경을 사랑한다며, 환경을 보호하자면서 패션계에 에코백 붐을 일으키고는 이제는 에코백을 비웃는 태도, 바로 이 지점이 힙스터 비판을 부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에서 힙스터가 비난 받는 이유는 돈으로 산 좋은 취향이 ‘남의 취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홍대의 한 카페가 힙하다는 소문이 SNS에 돌았을 때 일주일이면 이미 그 카페와 관련된 해시태그는 수백 개가 만들어진다. 누가 제일 먼저 그곳을 발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사진을 더 예쁘게 찍어 SNS에 올리는가가 중요하다. 그들이 소비하면 할수록 그들은 취향 없는 소비자가 되어간다. 이런 사람들을 ‘취향도둑’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모든 힙스터가 취향도둑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힙한 것을 찾는 사람이 있고, 그들은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이 눈에 띌수록 사람들의 힙스터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취향도둑이 SNS에서 한껏 힙스터 놀이를 하며 취향을 자랑할 때, 그들을 비난하는 ‘취향나치(취향나치라는 말은 ‘문법나치-잘못된 문법을 지적하는 사람, 문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상하수직관계를 따지고 실제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에서 따왔다)’가 등장한다.


이들은 취향도둑이 아무리 힙스터인척 해도 그들의 취향이 가짜라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나름의 취향을 가졌다. 그들은 취향도둑보다는 더 많은 하위문화를 알고 있으며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고,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지식과 정보는 완전하지 않다. 취향이라는 건 그야말로 이 세상의 수많은 음식, 음악, 영화, 패션, 책, 작가, 철학사상, 기계 등등 다양하다. 취향의 옳고 그름은 없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취향은 그저 개인의 기호일 뿐이다. 하지만 취향도둑을 비난하는 취향나치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 것을 바로 잡을 권리가 있다고 종종 착각한다.


사람의 취향이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천천히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10대 시절에는 오로지 대학 입시 때문에 공부만 하고, 20대 초중반에는 취업 공부를 하거나 공시 준비를 하고, 20대 후반에야 비로소 취직하여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긴다. 물론 본인이 번 돈을 모두 본인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중산층 계급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생활을 위해 돈을 벌면서 본인의 취향이나 꿈을 위해 독립하는 사람도 있고, 남이 만든 걸 즐기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젊은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한국의 힙스터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재 젊은이들의 경제력과 10대 시절 취향을 쌓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 생이 취향도둑의 양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 비난만 하지 말고 이제 막 본인의 취향을 알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초기에는 그저 남의 취향을 흉내 내지만, 시간이 흘러 점점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안겨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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