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울리는 스펙경쟁 그리고 취업 9종 세트
취준생 울리는 스펙경쟁 그리고 취업 9종 세트
  • 박혜지 · 안서진 기자
  • 승인 2018.05.15 22:23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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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성형 YES! 취업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되는 현실
△일러스트 고다윤 기자

△일러스트 고다윤 기자

 

Prologue
‘헬조선’, ‘문송합니다’, ‘N포 세대’ 그리고 ‘취업 9종 세트.’ 나날이 좁아지는 취업 문턱에 등장한 신조어다. 숨 막히는 취업 전쟁 속 취업준비생은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취업 9종 세트’는 취업준비생의 치열한 스펙 경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단어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경력을 뜻하던 취업 7종 세트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봉사와 성형수술까지 추가된 취업 9종 세트가 등장했다. 과연 그 뿐일까? 취업 시장이라는 무한 경쟁에 휩쓸린 ‘청춘’의 인생을 조명해본다.



#취업준비생 A씨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이다. 얼마 전 상담을 받으러 과 사무실에 다녀온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졸업 필수 학점은 다 채웠지만, 봉사 시간이 문제였다. 졸업하기 위해서는 32시간의 봉사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에겐 인터넷 강의로 채운 4시간 봉사 시간이 전부다. 안 그래도 취업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픈데 봉사 시간까지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벌써 막막하다.    

하루는 서류에 쓸 취업용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방문했었는데, 사진사가 말하기를 요즘에는 ‘취업사진전용 메이크업’이란 것을 해야 한단다. 능력과 경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인상으로 찍힌 사진 또한 은연중에 평가된다는 게 요즘의 보편적 인식이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인 ‘고함 20’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중 86.7%가 ‘취업 과정에서 외모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실제로 면접에 떨어진 후 면접관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양심이 있으면 성형이라도 하고 살아라”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간단한 아르바이트구인 공고를 찾아봐도 “미소가 아름답고 준수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원한다”라는 요구 사항이 쉽게 보인다. 

지원자의 능력 및 직무 적합성 등이 아닌 외모와 같은 외적 요소를 보고 채용의 당락을 결정하는 세태의 심각성은 2015년 12월 한 블로그 마케팅 회사에 올라온 인턴 채용 공고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C컵이상,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직원만 채용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취업을 위해 각종 자격증을 따고 온갖 직무와 관련된 공부를 해온 취업준비생은 좌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식의 가면을 쓰는 취준생
방학 때가 되면 해외 봉사, 자원봉사 등 각종 봉사 활동을 찾아 나서는 대학생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자발적인 헌신과 봉사심을 바탕으로 지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봉사 활동은 단순히 스펙을 쌓기 위한 수단이나 졸업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곤 한다. 

지난달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 사이트 알바몬이 대학생 849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해외 봉사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금전적 혜택(21.5%)과 더불어 49.2%의 응답자가 인턴, 가산점 등 취업 혜택을 꼽았다. 이 조사는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를 자처하는 봉사자보다 단순히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 봉사자가 더 많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봉사가 취업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 의미가 퇴색돼 버린 것이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또 다른 화젯거리는 ‘외모’다. ‘얼굴도 스펙’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취업을 위해 외모 관리는 필수가 됐다. 

온라인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2016년 기업 인사 담당자 880명을 대상으로 ‘채용 시 지원자의 외모 평가 여부’를 설문 조사한 결과, 63.8%가 ‘평가한다’고 답했다. 채용 시 외모를 보는 이유에 관해 묻는 질문에는 ‘대인관계가 원만할 것 같아서’, ‘자기관리가 뛰어날 것 같아서’, ‘외모도 경쟁력이어서’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이처럼 취업의 당락에 외모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으로, 2016년 같은 기관에서 구직자 7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설문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48.5%가 취업을 위한 외모관리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막막한 현실, 그럼에도 돌파구를 찾는 학생들
극심한 취업난과 무한 취업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 아싸’(자발적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가 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때문에 동기들 간의 친목 도모나 캠퍼스의 낭만 등도 점점 없어지는 상황이다.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다 보니, 취업준비를 위해 다양한 학원과 모임 등도 생겨나고 있다. 토익 점수 향상을 위해 모인 토익 스터디와 같은 스터디그룹의 경우, 같은 목적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고 서로 목표치를 확인해주는 등 동기부여와 학습의 효율성을 챙긴다. 이외에도 취업에 있어서 중요한 면접을 대비하기 위한 면접학원과 같은 이색 학원도 생겨나고 있다. 면접 학원에서는 면접 시 복장, 메이크업, 말투, 표정 등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 대학에서도 재학생의 취업 준비를 돕기 위해 취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취창업센터에서는 1:1 자소서 첨삭, 포트폴리오 관리, 면접 준비 설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죽전캠퍼스 취창업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잡카페는 2008년 신설된 이후 취업 정보, 스터디, 프로그램, 상담 등 취업 준비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취업지원팀 관계자는 취업과 진로에 고민이 있는 학생에게 “학년별, 단계별 프로그램이 상시 운영되고 있으니 혼자 고민하지 말고 부담 없이 취창업지원센터를 방문해 줄 것”을 당부했다. 

 

Epilogue
요즘 대학생들의 스펙 경쟁은 치열하다. 취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학점도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인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스펙과 학점을 얻기 위해 ‘아싸’를 자청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취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구직난으로 저학년 때부터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외모와 사회봉사까지 관리해야 한다. 때문에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동아리, 캠퍼스 생활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지식의 요람, 진리의 전당이었던 대학이 좋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여겨지면서 그 본질적인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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