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샛길, 걷다가 윤동주를 만나는 길
서촌 샛길, 걷다가 윤동주를 만나는 길
  • 강효진(국어국문·4)
  • 승인 2018.05.15 22:17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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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샛길로 들어가 골목을 거닐다 보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오서점이 있고, ‘윤동주 하숙집 터라고 지금은 안내판만 붙은 벽이 나온다. 계속 걸어가면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시절 하숙집에 머물면서 자주 산책했다던 수성동 계곡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인왕산 자락이다.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서 있다. 조금만 더 가면 푸른 잔디 동산이 나오는데, 여기가 시인의 언덕이다. 이곳은 하늘이 가깝고 바람이 불어오며, 밤에는 별도 박혀있고 당연히 시도 있다. 비탈에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 시비가 있다.

 

여기서 한숨 돌리고 내려가다 보면 한옥을 개조해 만든 청운문학도서관이 있다. 들어가서 아무 시집이나 한 권 뽑아 넘겨본다. 책을 가지고 나와 한옥 기와 아래서 오래 머무르며 읽어볼 수도 있다. 도서관을 나와 다시 길을 걷는다. 얼마 안 가 그 길의 끝이 서촌 큰길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길들이 만나는 지점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자화상>에서 우물 속 사나이를 들여다보는 윤동주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오래된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었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서촌 큰길로 걷지 않고 샛길로 굽이굽이 돌아서 왔을 뿐인데,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썼다.

 

시는 그렇게, 우회하는 길을 걸으며 자주 멈춰 서고 오래 머뭇거리는 일이었다. 시인 윤동주는 매일 밤 자신을 뒤돌아보고 부끄러워했던, ‘슬픈 천명을 가진 시인이었다. 당시에는 친일을 했던 지식인과 문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윤동주는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유학길에 오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창씨개명까지 하며 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편안히 학문을 하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또한 그는 나가서 독립운동을 하며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이종사촌 송몽규에 비해 한 줄 시를 쓰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을 한없이 무력하고 초라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는 시로 저항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영화 <동주>에서 동주는 말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개개인의 깊은 내면의 변화들이 보이는 힘이야.” 라고. 그리고 우리 역시 알고 있다. 그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던 그 마음이 등불을 밝혔고, 어둠을 조금 내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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