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왕의 순수한 첫사랑 ⑦ 루이 14세
태양왕의 순수한 첫사랑 ⑦ 루이 14세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5.23 17:20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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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첫사랑. 풋풋하던 시절, 손끝만 스쳐도 가슴이 떨리던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럽게 포장돼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게 되지요. 72년간 프랑스를 통치했던 태양왕, 루이 14세에게도 그리운 첫사랑이 있었답니다.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와 왕비 안 도트리슈는 결혼한 지 무려 23년 만에야 첫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뛸 듯이 기뻐하며 갓 태어난 왕자를 신의 선물이라고 불렀죠. 그토록 기다리던 후계자였으니 가히 신의 선물이라고 할 만하네요. 그렇게 태어난 것이 우리의 주인공인 루이 14세입니다.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의 관계도 재미있지만 제게 할당된 지면이 적은 관계로 그들의 이야기는 또 다음 기회에 만나보기로 하고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계속해보겠습니다.

 

▲ 샤를 푀르종, '주피터의 모습으로 표현된 루이 14세 초상', 1654
▲ 샤를 푀르종, '주피터의 모습으로 표현된 루이 14세 초상', 1654


루이가 고작 4살이었을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섭정을 맡게 된 어머니는 총애하는 추기경, 마자랭과 권력을 잡았고 얼마 후 귀족들이 벌인 최후의 반란이었던 프롱드의 난이 벌어졌습니다. 반란을 피해 어머니와 피난까지 가야 했던 10살의 어린 왕은 이 사건을 겪으며 절대 왕권의 필요성을 절실히 갈구하게 되었죠.



세월이 흘러 왕이 17살이 되었을 무렵, 추기경 마자랭의 조카인 마리 만치니가 프랑스로 오게 됩니다. 루이 14세는 1살 어린 마리 만치니와 마음이 잘 맞았고 마리의 재치있는 말투와 정직함에 크게 매혹되었다고 합니다. 마리 만치니 역시 어린 왕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십 대 소년·소녀의 설렘 가득한 연애가 수줍게 이어지자 주변 귀족들은 시기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둘을 지켜보았죠.

 

▲ 페르디난드 부트, '마리 만치니', 1661
▲ 페르디난드 부트, '마리 만치니', 1661

 

그러던 어느 날, 루이 14세는 중병으로 인해 끙끙 앓았고 마리 만치니는 밤낮으로 왕의 곁에서 왕을 간호했습니다. 앓아누운 자신을 울면서 간호하는 여자 친구의 정성에 크게 감동한 루이는 마리 만치니야 말로 천생연분이 틀림없다며 결혼하고 싶어 합니다. 낭만적인 것을 좋아했다는 루이는 왕에게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 크게 생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쯤 되면 마리 만치니의 외삼촌인 마자랭이 가장 신났을 거로 생각하시겠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마자랭은 현실적으로 이 결혼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둘을 떨어뜨려 두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일이었죠. 둘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밀리에 편지를 주고받으며 감정을 키워나갔고 마자랭은 어쩔 수 없이 루이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결혼 계획을 듣고 경악한 어머니는 눈물로 호소하는 아들에게 결혼은 결단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결국, 루이는 절대 왕권과 국가를 위해 스페인 공주인 마리 테레즈와 결혼하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루이 14세가 마리 만치니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났음을 알리는 날, 루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진주목걸이와 ‘나는 마리 만치니의 것이에요’라고 적은 목걸이를 한 강아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마리 만치니는 왕의 눈물에 ‘전하께서는 황제이신데도 이토록 눈물을 흘리시는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마리의 집안에서는 마리를 이탈리아 귀족인 콜로나 공작에게 서둘러 시집 보내버립니다. 마리는 남편과 세 아들을 두고 예술을 후원하며 살았지만, 남편의 지속된 폭행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였습니다. 결국,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달아나 언니와 유럽을 떠돌며 살게 되었죠. 어느 날 프랑스에 들렀던 마리는 루이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첫사랑의 힘을 아는 궁중 여인들이 왕이 마리의 소식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두 사람은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루이 14세는 노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리 만치니만큼 사랑했던 여인이 없다고 추억했으니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만큼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도 없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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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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