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파랑
뜨거운 파랑
  • 이운주(문예창작‧2)
  • 승인 2018.05.25 09:02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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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파랑

 

                                              이운주(문예창작2)

 

 

엄마의 방에선 엄마가 나오지 않아요

안방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지

밤새 축축해진 침대 시트에 손바닥을 대보고

익숙하게 검지와 중지를 움직이고

배터리가 닳아 희미하게 켜진 스탠드 불빛 너머

그늘진 이목구비가 흰 벽지 위에 새겨져요

 

그건 엄마를 닮은 괴물

아무런 무기도 없는 무기력한 괴물

달을 좀먹는 커튼이 괴물을 삼키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엄마는 숨을 고르는데

 

오늘 새벽따라 유난히 부어오른 문지방을 넘어요

흐르지 않는 시간처럼 길어지는 다리

자꾸만 적도로 가는 냉장고 문을 열자

네모난 주황빛 노을이 쏟아져요

우리는 왜 다른 시차를 가진 걸까요

 

언젠가 가장 뜨거운 불꽃은 푸른색이라는 걸 배웠어요

낯선 열대처럼 돌아가는 냉장고 속 엔진에 화장을 입고

굳게 닫힌 안방 앞에 서서 생각해요

 

엄마는 가장 뜨거운 파랑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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