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서툰 이별에 잠 못 드는 밤
세상과의 서툰 이별에 잠 못 드는 밤
  • 양민석 기자
  • 승인 2018.05.25 08:59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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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와 냉장고 소리가 들려오는 적막한 집 안의 새벽.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생각들이 맥락 없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마주친 사람들, 잊을 수 없는 학보사 일들, 요즘 유행하는 것들,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들, 되짚어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새벽의 단상이란 뚜렷한 결론처럼 완성된 것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의 과정은 아니지만, 마치 내일이면 멀리 떠나갈 친구 같아 잠시 늦은 시간을 빌려 그의 손을 붙잡고 있다. 잠이 들고 내일의 아침이 밝으면, 기자는 전혀 다른 낯선 세상에서 눈을 뜰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생각했던 세상과는 또 다른 낯선 세상. 이에 대해 철학자 흄(David Hume)은 “내일 해가 또 떠오를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며 ‘매일 해가 떠오르는’ 익숙한 경험적 인식의 세계를 회의하고 ‘해가 떠오르지 않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경험을 쌓는 귀납적 방법을 통한 개연적인 지식이 있을 뿐 세상에는 어떤 믿을 만한 확실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흄의 철학에 수긍이 간다. 세월호 사건, 알파고의 승리,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미투 운동. 그리고 잦은 이사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기 생각이 담긴 과제를 제출하고, 취재하며 겪었던 수많은 개인적인 경험. 숱한 사건들은 어린 시절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받아 확신하고 있었던 것들을 무너트리고, 익숙한 것들이 담긴 ‘상자’ 밖으로 나오라는 목소리를 들려줬다.


‘울면 안 돼’의 가사, 눈치 사회, 전통적 가족관, 영웅 등 일상을 움직이는 힘에 의존하기보다는 의심하고 거리감을 뒀다. 그 친밀한 것들을 멀리할 때마다 마음속에 찾아오는 상실감은 크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이 채워줬을지는 몰라도, 또 언제 어떤 것이 내 곁을 떠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시간이 흐르면, 성격과 취향이 바뀌고 삶에 대한 가치관을 재설정해야 할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잊힌 예전의 것을 대신해 주류가 돼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크고 작은 이별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쉽지 않다.


그럼 상실감에서 벗어나서 새로움에 대해 설렘을 느끼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이 반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하기보다는 변명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초현실적인 뉴스, 가치관의 혼란, 세대와 문화 간의 갈등,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파편화되고 불안정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절망과 권태를 느낀다.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해가 지고 늦은 밤이 되자 습관처럼 별 의미 없는 생각들로 밤을 지새운다. 한편으로는 고독한 침묵의 밤이 아닌 파란 하늘의 구름처럼 떠오르는 희망찬 아침을 소망한다.

 

양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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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epherdboy@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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