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 메이요 클리닉에 가다
외치, 메이요 클리닉에 가다
  • 서민(의예) 교수
  • 승인 2018.05.26 00:22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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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메디컬 히스토리 7
메이요 클리닉
메이요 클리닉

“와! 엄청나구나!”
 

외치는 빌딩 숲과 자동차 물결에 넋이 나갔다. 더 놀란 것은 손등에 새겨진 숫자로, 1996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소한 100년은 더 지났을 만큼 변화가 심했는데, 그 사이 불과 50여 년밖에 안 지났다는 건 더 놀라웠다. “이 시대라면 내 병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야.” 외치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메이요 클리닉 (Mayo Clinic)이라는 곳에 갈 수 있었다.


“무릎이 많이 안 좋긴 합니다.” 외치를 진찰한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외치를 바라봤다.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요. 일단 여기에 대해 약을 처방해 줄게요.” 무릎이 안 아프게 약을 준다는 말에 외치는 반색했다. 하지만 ‘일단’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또 뭐가 있나요?” 의사는 말없이 종이에 뭔가를 썼다.
 

“무릎 약은 그냥 통증만 완화해 줄뿐 치료를 해주는 건 아니어요. 수술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게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더 안 좋은 곳이 많아요.” 결국 외치는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MRI, 초음파, 심전도, 피검사 등을 받았다. 검사가 끝나자 병원 측에선 외치에게 3일 후에 오라고 했다. 그래도 외치는 걱정보다 기쁨이 컸다.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자신의 여정이 이제 끝나가는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의사가 준 약은 제법 효과가 있어서, 정말 몇 천년 만에 무릎 통증이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에 오지 않았죠?” 처음 보는 의사는 외치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따르면 외치는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척추가 휘고 타박상으로 인해 좌우의 다리 길이가 차이가 나는 것, 치아가 거의 닳아 없어졌으며 폐에 ‘폐기종’이라는 병이 있는 것은 문제 축에도 들지 않았다.

“문제는 당신의 심장 기능이 정상보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원래 심장은 쉬지 않고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는 중요한 기관인데, 외치에겐 심각한 빈혈이 있었다. 적혈구가 모자란다는 건데, 이건 외치가 신석기 시대에 철분 섭취를 잘 못 했기 때문이다.

“심장이 피를 잘 보내도 빈혈 때문에 우리 몸 곳곳에서는 피가 제대로 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래서 심장이 더 열심히 뛰는 거죠. 그런데 빈혈이 더 심해집니다. 심장은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하죠.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죠. 그런데 여기서 빈혈이 더 심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퍼져 버리겠죠.”

“빙고.”

외치는 갑자기 슬퍼졌다. 병을 고친 뒤 신석기시대로 돌아갈 날만 꿈꿨는데 말이다.

“하지만 너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 심장은 아직 완전히 퍼진 상태는 아니어요. 심장이식 수술을 하진 않아도 된다는 거죠. 제가 강심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그 약과 더불어 철분제를 꾸준히 드세요. 그러면 조금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말에 외치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약만 잘 먹으면 되는데 뭔 걱정이야. 하지만 외치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납창구에서 외치가 내야 할 진료비를 듣는 순간, 외치의 뇌혈관이 그만 터지고 말았다.

“사, 삼만 달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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