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주체
요리의 주체
  • 김태희(정치외교·4)
  • 승인 2018.05.30 12:29
  • 호수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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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삼킬 것 같은 불길이 지나간 뒤, 까맣게 탄 풀숲 위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은 사슴 한 마리가 놓여있다. 그 옆에는 현생 인류의 조상(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혹은 호모 사피엔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슴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입가에는 침이 고이다 못해 흐르기 시작한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는 죽은 사슴의 살점을 베어 문다. 사슴의 살점에서 붉은 육즙과 함께 끈적한 기름이 치아 사이로 흘러나온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맛. 잘 익은 고기는 잠들어 있던 인간의 미각세포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기원전 500만년, 인류 역사에서 ‘요리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 삼시세끼를 차려먹는 것은 어떤 동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요리를 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요리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은 많은 것을 얻었다. 요리를 하면 그동안 먹지 못했던 것을 먹을 수 있다. 통상적으로 익힌 음식은 그렇지 않은 음식보다 5배 빨리 소화된다. 그렇기에 소화과정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최소화 할 수 있다. 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간은 요리를 통해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요리의 효용성은 효율성에서 나온다.


요리는 인류의 진보에 발맞춰 변화를 거듭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다양한 음식이 나왔다. 일하다가 먹기 용이한 빵이 등장했다. 고기나 생선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절인 음식이 생겼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요리는 다양화됐다. 그리고 진화를 거듭한 요리는 드디어 최종 진화의 형태를 갖춘 듯하다. 앞서 요리의 효용성은 효율성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장점을 극대화한 ‘패스트푸드’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간편하게 먹으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빠르고 간편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M사와 K사의 로고는 패스트푸드의 시대가 온 것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동안 요리는 인간의 생존을 도왔지만, 패스트푸드는 그렇지 못하다. 극대화된 효율성 그 자체인 패스트푸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패스트푸드를 먹은 인간은 병약해졌다. 그들의 몸 곳곳에서는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육체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의 혈관은 포화지방으로 가득 찼다. 패스트푸드는 성인병과 당뇨병 등의 원인이 됐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인류는 죽어가고 있다.


기원후 2018년, 인간이 요리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요리는 최고 정점에 위치해 인간을 요리하는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생존을 위해 탄생한 ‘요리’란 도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존을 위해 다시 한 번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떤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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