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로미오와 줄리엣 ⑧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폴란드의 로미오와 줄리엣 ⑧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5.30 12:30
  • 호수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어릴 적 읽었던 동화와는 달리 백마 탄 왕자님들은 대부분 정략결혼의 상대와 평생 함께 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 중에도 간간이 사랑을 위해 살고 죽는, 요즘 말로 ‘사랑꾼’들이 등장하고는 했으니……. 이번 이야기는 평생 단 한 명의 여인만을 사랑했던 어느 왕에 대한 것입니다.

 

16세기의 폴란드는 야기에워 왕조의 지그문트 1세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조카인 보나 스포르차와 결혼했고 이 부부는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이때 태어난 아들, 지그문트 아우구스트가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왕실에서는 하나뿐인 아들이었던 지그문트를 금이야 옥이야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애지중지 키웠고 왕자는 폴란드의 왕위에 올라 야기에워 왕실의 대를 이을 후계자로서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아들이 나이도 찼으니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좋은 신부를 찾아 온 유럽을 뒤진 끝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엘리자베타와 아들을 결혼시켰습니다. 하지만 새 신부는 결혼한 지 고작 2년 만에 사망했죠. 어머니 보나 스포르차는 며느리가 눈을 감자마자 또다시 새 며느릿감을 찾아 고민하고 있었지만 정작 아들의 눈은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 얀 마테이코, ‘빌누스의 라지비우 법원 안의 지그문드 2세 아우구스트와 바르바라’, 1867
▲ 얀 마테이코, ‘빌누스의 라지비우 법원 안의 지그문드 2세 아우구스트와 바르바라’, 1867


왕자의 눈을 사로잡은 여인은 바르바라 리지비우. 리투아니아에서 손꼽는 명문가의 딸인 바르바라는 지그문트와 마찬가지로 몇 년 전 배우자를 잃고 다시 혼자가 된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훤칠한 162cm의 키에 호리호리하고 아름다웠다는 바르바라에게 지그문트는 열렬히 구애했고 곧 두 사람의 사랑은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바르바라의 가족들이 왕자를 가로막으며 과부의 명예가 떨어지니 결혼할 것이 아니라면 이런 짓은 당장 멈추라고 얘기했지만, 지그문트는 오히려 좋은 생각이라고 기뻐하며 바르바라와 비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후 약 1년 뒤, 지그문트로부터 결혼 소식을 들은 왕실은 아주 발칵 뒤집혔습니다. 하나뿐인 후계자가 이런 대형 사고를 치다니요! 보나 스포르차는 분노를 터트렸고 의회에서도 바르바라와 헤어지지 않으면 충성할 수 없다는 초강수까지 두었지만, 지그문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결혼한 지 약 3년만인 1550년에 바르바라는 폴란드의 왕비로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 요제프 시밀러, ‘바르바라의 죽음‘, 1860
▲ 요제프 시밀러, ‘바르바라의 죽음‘, 1860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르바라의 건강상태는 점차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결혼 후 종종 복통을 호소하던 바르바라는 왕비가 된 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어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사신을 보내 며느리로 인정하겠다고 말했을 때나 잠시의 기쁨을 맛보았던 바르바라는 왕비로 즉위한 지 5개월 만에 서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시어머니인 보나 스포르차가 며느리를 독살한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렸죠. (바르바라의 사망원인은 암으로 짐작됩니다.)

 

아내의 사망 이후 지그문트는 나라에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재혼했지만 새 아내와는 사이가 매우 나빠 자녀를 보기는커녕 같은 집에서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그문트가 후계자를 하나도 두지 못하면서 폴란드의 야기에워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바르바라를 그리워한 지그문트는 주술사를 불러 강령술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주술사는 영혼을 불러올 수는 있지만, 영혼을 보더라도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합니다.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요. 흐릿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형체를 본 지그문트는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갔지만, 형체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늘 바르바라를 그리워했던 지그문트는 평생 상복을 입었고 바르바라를 기리는 방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죽을 때까지 아내를 사랑했던 그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이주은 작가
이주은 작가 다른기사 보기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