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그대, 안녕하신가요
혐오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그대, 안녕하신가요
  • 안서진·이도형 기자 정리=장승완 기자
  • 승인 2018.09.05 12:29
  • 호수 14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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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혐오가 유행인 사회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누군가를 혐오하며 때론 혐오의 대상이 된다.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비참하고 무서운 일이다. 왜 우리는 혐오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을까, 또 우리 사회에 떠다니는 혐오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혐오사회를 알아보자.

 

혐오가 돈이 되는 세상
혐오를 소비하는 사람들
혐오사회의 주 용의자는 근래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1인 방송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1인 방송의 유행에 따라 아프리카TV나 유튜브와 같은 1인 방송 플랫폼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시청자를 흡수하고 있다. 하지만 높아지는 인기만큼 부작용도 만만찮다. BJ나 크리에이터는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을 쏟아낼수록 더 많은 시청자가 몰려 수입이 높아지고, 방송 플랫폼은 BJ의 수입 증가가 곧 자신들의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표현의 필터링이나 모니터링에 있어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1인 방송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유튜브 1인 방송을 진행하는 크리에이터 ‘갓건배’는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남성, 성소수자, 6·25전쟁 참전용사 비하 등의 혐오 표현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이에 크리에이터 신태일은 비공개로 방송 하던 갓건배로 추정하는 사람의 얼굴을 공개했고, 아프리카 티비 BJ 김윤태가 후원금이 일정액 모이면 ‘갓건배’를 살해하러 간다는 말로 시청자의 지갑을 열도록 유도했다.


이 기간에 신태일의 유튜브 영상 조회 수는 이전 보다 약 5~6배 증가한 약 300만 회를 기록했다. 유튜브는 광고 수입의 55%를 분배하고 구독자 수에 따라 지속적인 광고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크리에이터는 자극적인 영상과 혐오 표현을 쏟아낼수록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이런 인터넷 1인 방송이 학교로까지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실에서 유행하는 BJ의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교 근처 PC방만 가도 ‘애미 뒤졌냐, 게이 새끼, 걸레 됐다’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이 학생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신준우(15) 씨는 “처음에는 이런 표현들이 충격적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쓰다 보니 익숙해졌다”며 “패드립(패륜적 욕설 및 혐오표현) 정도는 쳐줘야 무리에 어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서 5년간 교직 생활을 한 고등학교 교사 A 씨는 몇 해 전부터 교실 풍경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고 한탄한다. 학생들의 언어만 들으면 조폭인지 학생인지 구분도 안 간다는 것이다. A 씨는 “학생들이 예전부터 욕설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요새는 부모 욕과 장애 학우의 약점을 이용한 표현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유행어를 쏟아낸다”며 “이미 대화의 절반 이상이 혐오 표현들이고 다 큰 고등학생들을 제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2016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25%가 인터넷 방송을 시청한다. 따라서 적절한 규제와 처벌이 시급하지만, 1인 인터넷 방송에 대한 규제는 미흡하다. 국내 인터넷 방송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천여억 원을 웃돌았지만 1인 방송에서 쏟아지는 혐오표현을 적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안이나 제재 방안도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인터넷 방송을 일일이 적발할 인력조차 확보되지 못해 힘든 실정”이라며 “아직까지는 사업자에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모니터링단을 운영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혐오 중의 혐오
성별 간의 전쟁
성별 갈등을 바탕으로 하는 혐오는 대한민국 ‘혐오 사회’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치녀’, ‘한남충’ 등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는 혐오 관련된 신조어들은 우리 사회가 혐오에 중독됐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혐오가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사상 최대의 페미니즘 시위라고 불리는 혜화역 시위, 광화문 시위 등 혐오의 범위가 오프라인으로까지 확대됐다.


혜화역 시위는 홍대 누드크로키 몰카 유출 사건으로부터 비롯됐다. 지난 5월 1일 홍익대학교 회화과 인체 누드 크로키 전공 수업에 참여했던 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이 여성우월주의 사이트인 워마드에 게재됐고, 이후 경찰에서는 지난 5월 10일 범인을 긴급체포해 다음 날 11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여성이 피해자였던 성범죄 사건보다 남성이 피해자가 됐던 홍대 누드크로키 사건의 빠른 수사 진척이 편파적이라며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처음 시작됐다. 해당 시위는 극단적인 남성 혐오 표현은 물론 남자라는 이유로 대통령까지 조롱해 논란이 됐다. 


여성 혐오로 인한 대표적인 사건인 ‘강남역 살인사건’은 올해로 2주기를 맞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은 ‘우리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며 사회 전체를 향해 성적 평등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여전히 성별 간의 혐오가 만연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투 운동 역시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 대한 극단적이고 대립적인 감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성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서 온‧오프라인은 이성 간의 혐오로 물들여졌다.


이성 간의 혐오는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억압받았던 여성들이 여성 혐오에 맞서 미러링 방식을 통해 남성 혐오 현상이 확산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편을 나누어 서로를 향해 조롱하는 세태는 건강한 논쟁 문화와 더불어 서로의 가치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여준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혐오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과제 중 하나다.

 

Epilogue
세계 인권 선언 제2조에는 ‘모든 사람에게는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입장이나 여타의 견해, 국적이나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이나 여타의 신분과 같은 모든 유형의 차별에서 벗어나서,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모든 인간은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지만, 그 속에는 누군가를 혐오할 자유와 권리는 없다.
혐오는 편하다. 나와 다르다면, 내 가치와 다르다면 그저 미워하고 상처 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우리도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易地思之 : 상대방(相對方)의 처지(處地)에서 생각해봄’, 2천여년 전 맹자의 어지러운 세상을 태평하게 살기 위한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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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염 2018-09-15 13:08:31
싫어하면 그만 ㅠㅠ 그 험한 말을 받은 사람에게는 아픈 상처로 기억될 수 있는건데.. 공감가네요

엄태지 2019-03-30 01:33:11
요즘은 일베, 메갈, 기레기 같은 놈들 때문에 저런 혐오가 확산되고 있는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