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쪽방촌 – 앞 다툰 관심 속 여전히 외로운 주민들
영등포 쪽방촌 – 앞 다툰 관심 속 여전히 외로운 주민들
  • 한예은·김한길 기자
  • 승인 2018.09.04 23:38
  • 호수 14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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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쪽방의 사전적 정의는 최저 주거기준 미만의 주택 이외의 거처로서, 쪽방촌은 도시의 빈곤계층 발생과 역사적 배경을 함께한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도시 빈민이 발생하기 시작한 후부터, 쪽방은 노숙의 위기에 처한 빈곤계층의 마지막 잠자리였다. 2018년의 쪽방도 도시에서, 또 사회에서 소외된 빈곤계층의 사람들이 산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좁은 공간 창문도 없는 쪽방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

본지는 서울의 5대 쪽방촌 중 하나인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해 그들의 하루를 카메라에 담고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국이 들썩였던 8월 중순, 도시에서 소외된 쪽방촌 사람들을 만나 도시 빈민의 삶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쓸쓸한 적막이 감도는 쪽방촌 골목
쓸쓸한 적막이 감도는 쪽방촌 골목

◆ 세상에서 가장 좁은 방들이 있는 곳, 쪽방촌에 도착하다

영등포역의 거리는 북적인다. 4차선의 넓은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 어디론가 바쁘게 걷는 사람들은 도시의 표본처럼 느껴진다. 한강 이남에 자리 잡은 영등포는 일찍부터 공업지대를 형성하면서 시가화 된 지역으로, 주거지보단 공업단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등포역 앞엔 철강 공업 단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영등포 쪽방촌은 바로 이곳에 위치해있다.

영등포 쪽방촌에는 2018년 기준 541개의 쪽방이 있고 520명의 쪽방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쪽방의 크기는 평균적으로 1.5평(4.9㎡)을 넘지 않는다. 성인 한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쪽방에는 주로 도시 빈민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의 평균나이는 63세로 대부분이 독거노인들이다.

빛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쪽방 건물 입구
빛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쪽방 건물 입구

◆ 한 평 남짓 되는 방…그곳에 사람들이 산다

기자는 본격적으로 건물 사이에 좁게 난 골목을 통해 쪽방촌으로 걸어 들어갔다. 쪽방촌으로 가는 길에는 광야교회, 요셉의원 등 무료급식소와 복지시설이 있었다. 복지시설을 따라 쭉 들어가자 큰 길이 나왔고 영등포 고가차도가 위로 나 있었다. 큰 길이 나오자 중간마다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 벌건 대낮에 삼삼오오 모여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다. 쪽방촌에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따라 길을 걷는데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로는 개인 화장실이 따로 없는 쪽방촌엔 공용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용변을 골목에 그대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한다.

쪽방들이 모여있는 쪽방촌에 들어왔다. 역에서 안쪽으로 한참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쪽방촌은 4, 5가구가 일자로 쭉 붙어있었다. 주로 1m 폭이 채 되지 않는 골목들로 이루어져 거미줄처럼 계속 방이 존재했다. 담벼락에 난 쪽문을 열고 들어가니 쪽방촌 내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방들은 모두 불이 꺼져있고 가파른 사다리를 통해야 올라갈 수 있는 2층에 있는 방은 아예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안에 계신 할아버지께 부탁해 방안을 살펴보니 미니 냉장고와 선풍기, 생필품으로 가득 차 좁은 방이 더 좁게 느껴졌다. 그마저도 창이 있거나 1층에 있는 햇빛과 바람이 통하는 방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2층 구조로 된 방이나 창이 없는 방은 통풍이 되지 않아 퀴퀴한 곰팡이와 먼지 냄새로 들어갈 수 없는 정도였다.

선풍기로 더위를 피해난 쪽방촌 주민

 

방이좁아 물건이 어지러이 쌓여있는 방 안
방이좁아 물건이 어지러이 쌓여있는 방 안

 

◆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생활고를 겪는 쪽방촌 주민들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기호순(50․가명)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가 있고 당뇨, 갑상선, 우울증을 앓고 있어 의료급여 1종 대상자다. 기 씨는 현재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지원금을 받고는 있지만, 정부 지원금만으로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정부 지원금 73만 원 중 쪽방촌 월세 25만 원을 제외하고 담뱃값, 식비, 교통비까지 부담하려면 생활이 빠듯하다”며 “생활비가 부족해 일하고 싶지만, 급여가 잡히면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거나 지원금이 깎이기 때문에 일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쪽방촌 주민 김행자(82․가명) 씨는 원인 모를 온몸이 떨리는 병을 얻게 된 후에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몸이 불편해 일할 수 없어 정부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김 씨는 “몇 년째 연락도 안 되는 딸이 주민등록상에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신청에서 떨어졌고 30여만 원 남짓 되는 적은 보조금으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인 가구, 취약가구, 노인가구, 장애인 가구, 차상위가구 중 적지 않은 사람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김행자 씨처럼 기초수급보장 소득인정액 기준은 충족하나 자녀가 있어 부양의무자(수급권자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통상 직계혈족 부모, 아들, 딸을 가리킨다) 제도 기준에 걸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대상은 아닌 사람을 가리켜 비수급 빈곤층이라 부른다. 현재 비수급 빈곤층은 103만 명으로 생활은 최저생계비 이하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대상보다도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지원금이나 돌보미 서비스, 무료 급식 등 정부의 복지 지원에서 많은 부분 제외되기 때문이다. 비수급 빈곤층의 주요 원인은 획일적인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개선이 꾸준히 제시됐다.

이에 오는 10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이 주거 지원 부분에선 적용되지 않을 예정이다. 즉 주거 지원 급여기준이 완화돼, 서울 지역 최고 21만3천 원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보조금을 받지 못했던 비수급 빈민층에게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쪽방촌 문제는 정부보조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등포 쪽방촌 상담소 이광우 실장은 “실제로 쪽방을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않고 심지어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 그들이 쪽방촌을 떠나지 못하는 진짜 이유     

이 실장은 주민들이 쪽방촌을 ‘못’ 떠나는 게 아니라 ‘안’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쪽방촌에는 무료급식소와 요셉의원 등 급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복지 인프라가 자리 잡혀있고, 생필품 지원 등 사회적 후원 서비스가 많아 오히려 물질적인 부분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그들이 쪽방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람’ 때문이었다. 쪽방촌 주민 대부분이 임대주택 입주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입주하지 않는 이유는 수년 동안 같이 지낸 이웃을 그대로 두고 떠나기엔 임대주택은 너무나도 외로운 곳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빈곤 실태조사에 따르면 쪽방 주민 82.6%가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쪽방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과 진짜 문제는 물질적 결여보단 정서적인 문제로 얽혀있는 것이었다.

이에 10년째 영등포 쪽방촌 치안을 살피는 영등포역파출소 정순태(57) 경위에게 쪽방촌 주민을 위해 진짜 필요한 정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고독사 방지를 위해선 주민 간의 끈끈한 관계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주민들이 같이 놀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쪽방 상담소에도 무더위쉼터가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밀접성이 높은 쪽방촌 인근에 노인정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쪽방촌에 부족한 것은 물질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진짜 쪽방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과 ‘관계’였다. 그들이 대낮부터 독한 소주를 마시는 이유가 당연히 텅 빈 지갑 때문이라고 서둘러 판단해버렸던 것이 부끄러워 서둘러 쪽방촌을 나선다.

 

epilogue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 1위이다. 쪽방촌을 통해 깨달았듯이 사람의 행복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조건이 충족됐을 때 이뤄진다. 따라서 쪽방촌 사람들의 행복은 정부의 주택 보조만으로도 얻을 수 없고 이웃의 정이 있다고 한들 주거지가 좋지 않다면 그 또한 삶의 만족감을 줄 수 없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쪽방촌 주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를 반기지 않았다. 간혹 어떤 주민은 왜 자신들이 사는 곳에 왔느냐고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에게 불편한 것은 어쩌면 좁은 잠자리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냉대였을 지도 모른다.

쪽방촌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해 매년 시행하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혜성 사업과 임시처방에 그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제 더 이상 보여주기식 지원을 넘어 쪽방촌 주민 또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임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자활과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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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염 2018-09-15 12:39:57
쪽방촌을 벗어나도 또 다른 차가운 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김홍제 2018-09-05 14:42:30
좋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