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의료
AI와 의료
  • 서민(의예) 교수
  • 승인 2018.09.05 00:06
  • 호수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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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의료
▲로봇 닥터

2016년, 한 강의실에선 내과 의사와 컴퓨터가 나란히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검사소견이 떠 있었다. 의사와 컴퓨터는 그 화면을 보고 가장 가능성 있는 진단명 1개와 추가로 생각할 수 있는 진단명 2개를 더 써야 했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에서 승부를 벌였다면, 이들은 누가 더 진단을 잘하느냐를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이는 중이었다. 승부는 의사 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1순위 진단명의 정확도에선 의사가 72%, 컴퓨터가 34%였고, 3개까지 봤을 때는 의사가 85%, 컴퓨터가 51%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환자 진단이 바둑보다 더 어려운 것일까? 문제는 컴퓨터의 지나친 오지랖이었다. 콧물이 나면서 기침이 동반되는 환자가 있다면 꼭 의사가 아니라도 감기라고 생각한다. 이건 경험의 문제로, 그 의사는 수많은 감기 환자를 봤으니 순식간에 “감기야!”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그런 경험이 없고, 대신 방대한 지식만 있다. 그 지식을 가지고 진단을 하려면 영 헷갈린다. 콧물과 기침은 꼭 감기뿐만이 아니라 축농증일 수도 있고, 알레르기거나 자가 면역질환, 심지어 암일 수도 있다. 가능한 진단명 수십, 수백 개가 컴퓨터를 어지럽히니, 컴퓨터가 틀린 진단명을 제출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컴퓨터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바둑만 해도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컴퓨터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측했지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않았던가? 방대한 지식에 경험이 더해진다면 의사는 컴퓨터의 적수가 되기 힘들다. 그리고 그 경험은 컴퓨터가 직접 환자를 봐야 하는 게 아니라, 의사들이 써놓은 환자 차트들을 컴퓨터에 입력하기만 해도 너끈히 충족될 수 있다. 컴퓨터가 지금 같은 속도로 발전한다면 적어도 몇 년 안에 의사들이 무릎을 꿇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절대로 대체하지 못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환자와의 긴밀한 접촉이다. 인간이란 참 오묘한 존재인지라, 환자의 말을 의사가 진지한 자세로 들어주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해 주기만 해도 증상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기도 한다.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도 사실은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로 인해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이 둘의 차이는 다음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암의 크기가 크고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생각해 보자. 열심히 치료한다고 해도 오래 살 확률은 떨어지지만, 인간 의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제가 보기엔 치료만 잘 받으면 건강해질 수 있어요. 저를 믿고 한번 해봅시다.” 컴퓨터라면 다음과 같이 얘기할 것이다. “암 겁나 큽니다. 치료해도 1년 이상 살 확률 10% 미만. 그래도 암이 식도를 완전히 막지 못하게 항암제는 써야 함.” 자, 둘 중 어느 경우에 환자가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치료가 성공하려면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치료 면에서는 컴퓨터가 감히 의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 문제는 지금 의사들이 환자에게 진지하게 공감해주고 있느냐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혹시 컴퓨터가 아닐까?’라고 의심되는 의사들이 분명히 있다. 의사 한 명이 보는 환자의 수를 감안할 때, 컴퓨터 같은 의사 한 명의 존재는 생각보다 크다. 첨단기술의 시대가 될수록 의사들의 인성이 더 강조돼야 함은 이 때문이다. 물론 여기엔 환자 측 요인도 중요하다. 사람과의 접촉보단 스마트폰이랑만 소통하는 사람이라면, 감정을 가진 의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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