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삶의 스승, 자연을 카메라에 담다.
영원한 삶의 스승, 자연을 카메라에 담다.
  • 김달해 기자
  • 승인 2018.09.10 14:46
  • 호수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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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규(63) 다큐멘터리 PD
 
▲최삼규(63) 다큐멘터리 PD
▲최삼규(63) 다큐멘터리 PD

 

 

 

Prologue

프로듀서(PD)는 영화와 연극,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정해진 각본과 연출 없이 촬영하는 PD가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최삼규 PD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동물의 왕국’, ‘사람이 좋다’. 모두 한 번씩은 들어봤을 프로그램 이름일 테지만, 매주 챙겨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기자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대중에게 다큐멘터리가 드라마와 예능보다 낯선 분야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수십 개의 대작을 제작한 최삼규 PD에게 다큐멘터리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장인이라고 불리는 최삼규 PD를 상암동 DMC 오피스텔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1984년 MBC PD로 입사해 31년간 방송 제작 활동을 했다. 51편의 작품과 함께 퇴직하고 현재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의 특별 교수로 있다. 현재는 대학 수업 이외에도 다양한 조직을 대상으로 자연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길 원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PD에 지원했을 당시만 해도, 정부의 억압이 심했던 때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PD들이 진실을 밝히는 것을 보고 당시에 나를 비롯한 청년 대부분이 시사고발 프로그램 PD들에 막연한 동경을 갖게 됐다. 그래서 MBC에 입사해 시사고발 프로그램 제작을 맡게 됐는데 1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내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꼈다. 쓰레기 무단 투기에 관한 내용을 촬영할 때 폭력배에게 돈을 주고 쓰레기를 넘기는 모습을 담게 됐는데 그 모습을 쫓다가 싸우고 맞고 많이 다치게 됐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다른 교양 프로그램을 찾던 중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담당하게 됐다.

▶ 이후 쭉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자연 다큐멘터리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알면 알수록 재밌어지는 자연의 매력이 있다.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전에 곤충의 이름을 외우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나비, 메뚜기, 잠자리만 알고 있었던 나였는데 점점 그들의 생존법을 알다 보니 너무 재밌었다. 나비가 꽃 위에 앉아서도 날개를 흔드는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수나비를 유혹하는 암나비의 행동이라는 것을 보고 신기하기도 했고 애벌레가 돼서 먹이를 많이 먹을 수 있게 알을 하나하나 다른 곳에 낳는 암나비의 모성애에 감탄하기도 했다.

▲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
▲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

 


▶ 1시간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1년 이상의 제작 과정을 투자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오랜 제작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을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순히 동물의 생활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 같지만 그 시간에 깨닫는 것이 많다. 그리고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에 가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촬영 과정에서 허무함과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길을 걷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 수많은 다큐멘터리 중 특히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을 많이 제작했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환경운동, 생명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연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레 자연을 좋아하게 되고 또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시청자가 즐겁게 영상을 보는 동안 자연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 야생 촬영 경험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할머니 침팬지가 부모를 잃은 새끼 침팬지를 입양해서 키우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 사회에서 할머니가 손주를 예뻐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이 먹이를 찾으러 나무에 올라가서는 1시간 동안 껴안고 우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을 잘 안아주지도 못하는데 오히려 동물들이 서로를 꼭 껴안고 위로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 자연과 인간사회를 비교해 봤을 때 자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흔히들 야생의 세계를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사냥과 먹잇감으로 생활하며 대부분의 나날이 평화롭게 유지된다. 그래서 나는 야생의 세계가 조화와 공존의 세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 가혹한 것 같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우리 모습은 자연과 확연히 다르다. 자연의 세계처럼 각자의 삶에만 충실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 다큐멘터리 PD로서 다른 드라마나 예능 감독들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이 있다면.
드라마나 예능 감독들은 정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우나 가수들과 상호작용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데, 다큐멘터리 PD들은 세세한 그림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또한 자연을 연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원하는 장면을 위해 끝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을 하나 고르자면.
‘어미 새의 사랑’이라는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 특히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본래 둥지의 주인이 그 알을 품어서 번식하는 ‘탁란’의 장면을 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3달 반 정도의 시간 동안 3만㎞를 돌아다니며 탁란 둥지를 찾았기 때문에 그곳의 주소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 평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자신만의 철칙이 있나.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시청률로 따지지 말고 내가 만든 영상을 우리의 아이들과 후학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사랑하도록, 아끼도록 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자는 것이다. 이런 고집스러운 생각 때문에 오랜 촬영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특히 다큐멘터리를 접했으면 하는 연령층이 있나.
어린 친구들이다. 영상을 통해서라도 자연과 가까워지면 자연을 훼손하는 행동을 덜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시대가 발전하고 인간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 과정에서 환경오염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내가 초등학교에 강연을 간 적이 있는데 요즘은 곤충 채집 활동도 안 한다고 하더라. 조금이라도 어릴 때 간접적으로라도 자연과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다큐멘터리 PD로서 새로운 목표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DMZ가 살아있다’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북측과 이야기가 잘 돼서 같이 제작 시작 단계까지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갑자기 틀어지게 되면서 프로그램 제작을 하지 못하게 돼 아직까지도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제작했으면 한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OO은 무엇인가.
‘설렘’ 또는 ‘기대감’이다. ‘오늘은 나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즐거울 거야.’ 하는 기대감이 날 더 행복하게 하고 덜 늙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기대감을 마음 한 편에 품고 있고 싶다.

▶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늘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하며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모두 아침에 양치하며 거울을 볼 때, ‘난 챔피언이다’ 고 말한다면 하루가 기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지 않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산다면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pilogue
다큐멘터리 제작을 다른 형태의 환경 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야생의 삶이 인간사회보다 평화롭다고 말하는 최삼규 PD. 그에게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직무를 뛰어넘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모티프가 되는 존재였다.
가끔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이 우리에게 더 깊은 고뇌와 성찰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자연의 모습과 야생에서의 생활이 바로 그것인데, 사회생활에 지쳐 마음이 답답할 때 다큐멘터리 한 편을 묵묵히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무엇보다도 깊은 울림을 받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해 본다.

 

김달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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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nsun515@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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