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마주하다
나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마주하다
  • 김민제 기자
  • 승인 2018.09.11 14:21
  • 호수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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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희(29) 작가
▲ 작가 백세희(29) 씨
▲ 작가 백세희(29) 씨

 

Prologue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 감정이 살아서 묻히면 더 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말을 남겼다. 감정을 쌓아두고만 있으면 나중에 더 힘들어질 테니 감정을 바로바로 표현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 못 할 때가 더 많고, 듣기 싫은 말 들어야 할 때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계속 품고 있게 되고, 결국 ‘더 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 감정’에 힘들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그 괴상한 감정이 너무나 무겁다면, 커질 대로 커져서 감당하기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괴로움을 피해 모든 것을 끝내야 할까, 아니면 배는 고프니 떡볶이를 먹으러 가야 할까. 지금 바로 선택하기 어렵다면,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해왔던『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29) 씨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10년간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백세희라고 한다. 너무 우울한 소개인가? 그래도 출판사에서 5년간 일했고, 떡볶이와 책, 글쓰기와 아이돌을 사랑하는 평범한 스물아홉 살이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올해 6월 첫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펴냈다.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울증을 앓았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질환을 앓았나.
앞서 적었듯이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불안장애는 이유 없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을 말하고, 기분부전장애는 가벼운 우울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사실 나도 처음 들은 생소한 질환인데, 적어도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진단된다고 한다.

 

▶ 꽤 오랫동안 기분부전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치료를 받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보통은 이런 우울증상을 성격 문제라고 여겨버리기에 병원을 찾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나 역시 우울증상이 외적인 요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가난과 가정폭력이라는 좋지 못한 환경에 노출돼 있어서인지 늘 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외적인 요소를 바꾸고 싶어서 살을 빼고, 괜찮은 대학교로 편입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애인도 만났는데 똑같이 우울했다. 행복이라는 건 내가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길을 잃은 기분이랄까. 그때 처음으로 우울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란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어떻게 했나.
처음에는 대학교에 있던 무료 상담센터를 찾아갔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상담사를 만나 오히려 상처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에도 꽤 여러 번 병원을 찾았지만 명확한 진단을 받았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 작년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다행히 잘 맞는 분을 만나 지금까지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괜찮은가.
많은 분들이 지금은 괜찮은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조금 난감한 게, 하루하루가 딱 한 단어로 정의되지 않듯이 건강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엔 행복해서 오늘만 같다면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날엔 그냥 무덤덤하고, 또 어떤 날엔 커다란 불안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릴 때도 있다. 한 마디로 상태가 유동적이다. 그래서 지금의 건강 상태를 묻는다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답하고 싶다.

 

대학을 졸업해 직장을 다니는, 소위 ‘평범한’ 생활을 이어왔다. ‘정신질환이 있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경험한 적이 있나.
편견이라기보다는, 괜찮은 대학에 원하던 직장도 다니고, 외모도 나쁘지 않은데 왜 우울한 거냐고, 넌 너무 자기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이 힘들었다. 사람들은 겉으로 멀쩡해 보이면 너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왜 그렇게 힘들어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말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행복에도, 불행에도 어떤 이유나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쫒아 고군분투하다가 공허함을 느끼게 됐던 나로서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처럼 자신이 우울증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블로그에 내원 기록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떤 분이 장문의 댓글을 남겨주셨다. 자신과 증상이 비슷한 사람이 존재한단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면서. 나는 솔직한 이야기를 적었을 뿐인데 이렇게 위로받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가능하다면 조금은 도움도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다.

 

책 제목이 특이한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제목 그대로다. 너무 우울하고 죽고 싶어서 오늘은 꼭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배고파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나 자신이 항상 모순적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탱 파주의 『완벽한 하루』라는 책을 읽고 나서는 이런 모순적이고 상반된 감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고, 이 마음을 제목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다.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표지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표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사실 평소에도 솔직해지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인데, 그게 나를 가장 마음 편하게, 또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닌 척하고, 숨기면서 ‘내가 아닌 모습’을 보인 날에는 늘 집에 돌아와 이불을 뻥뻥 차며 후회했다. 결국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 솔직함이라는 걸 깨달은 후에야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다. 특별히 애써서, 힘들게 용기를 내서 책을 쓴 게 아니라 ‘그냥 이게 나야’라는 마음으로 나를 드러낸 것이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용기 있다고, 솔직하다고 봐주시는 것 같다.

 

책을 쓰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책을 쓰기 전에는 많이 외로웠다. 나만 이상하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내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 줄었다. 책을 읽고 위로받았다는 메일이나 메시지를 받을 때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서 위안이 되기도 하고. 이전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미약하게나마 건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지금까지 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젠가 내가 나아지는 과정이 너무 더딘 것 같다고, 죽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더 좋은 해결책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만약 우리가 캄캄한 우물에 빠졌다면 거기서 일어나 우물의 벽을 찬찬히 짚어봐야 그게 우물이라는 걸 알 수 있듯이, 실패를 짚어나가다 보면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동전의 양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인데 지금은 그걸 힘들고 무겁게 여기고 있을 뿐이라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무엇인가.
강아지. 마지막까지 함께 있고 싶다.

 

인터뷰를 접할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회와 타인의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억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신과 선생님도 힘들 땐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힘든 거라고 했다. 힘든 것에는 심하거나 덜한 것이 없다.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니 남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한다. 단순히 우울증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스스로의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이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야, 이 정도 조건이면 우울해하면 안 돼, 감사해야 해’라는 생각을 멈추고 힘들 땐 힘든 대로, 기쁠 땐 기쁜 대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Epilogue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전학 첫날 성공적인 하루를 만들기 위해 기쁨이는 슬픔이를 원 밖으로 못 나오도록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은 꼬이고, 결국 주인공 라일리는 전학 첫날부터 반 아이들 앞에서 울고 만다. 기쁨이는 슬픔이를 어떻게든 가둬 억누르려 했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나온 결과다. 라일리의 경우 부끄러운 기억을 남기는 것으로 끝났지만, 만약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일이 계속해서 쌓이게 되면 그 결과는 단순히 부끄러운 기억만으로는 끝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백세희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비록 이전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 되겠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왠지 모를 우울함에 축 처지고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동안 원 안에 갇혀있던 감정에게 다가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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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ange88@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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