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불을 마주하는 자세
마중불을 마주하는 자세
  • 손나은
  • 승인 2018.09.12 19:36
  • 호수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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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해 이뤄져 있다. 내용을 서술하는 문장은 주관 없이 담백하다. 그러나 다루는 소재는 항상 화제성과 시의성을 갖추며 사람에 따라 자극적이라 판단될 때도 있다. 당시 상황에서 문제 지적이 필요하거나 의문이 생기는 주제가 기사의 소재로 선정되기 때문이다. 본지의 지난 호 특집 기사를 참고하자면, 자칫하다가 과열될 수 있는 소재인 ‘혐오’가 사용됐지만 기사에 사용된 문장 중 의견이 한쪽에 치우치거나 공격적인 것을 찾기 힘들다. 꽤 역설적인 현상이다. 끊임없는 말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주제로 천 글자 정도의 담담한 글을 적는 것이니 말이다.

다음 호 신문을 위한 아이템 회의 때마다 기자들의 입 밖으로 나오는 보도 거리는 거친 소재가 많다. 보도해야 하는 주제는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에게 환영받기를 기대하기보다 냉대를 예상하며 취재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겁을 먹더라도 그렇지 않은 척하며 취재처에 당당히 예민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게 취재가 끝나면 기사를 작성한다. 자신의 주관을 제외하고 날것의 소재를 가공해 기사를 만든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어휘를 지우고, 첨삭을 받으며 문장 전체를 뜯어고치기도 한다. 한쪽에 편향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장은 가감 없이 삭제된다. 적고 싶은 말이 있어도 쓰지 못할 상황이 있고, 쓰고 싶지 않아도 적어야 하는 상황이 있다. 문장을 뽐내고 싶다면 신춘문예를 노리는 게 낫고, 주장을 내세우고 싶다면 토론 대회를 나가는 것이 낫다. 신문은 나를 보여주는 곳이 아닌 세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구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1년여의 시간 동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가르침을 받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겪었다.

기자는 이 모든 과정이 성화를 옮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올림픽을 시작하기 전, 성화를 봉송하는 이는 사람들의 적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해 성화대에 불을 붙여 사건의 개막을 알린다. 다음 주자에게 성화봉을 넘기기 위해서라도 발을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우리 신문 역시 그렇다. 예전보다 신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지고 독자가 줄어도, 묵묵히 기사를 작성하고 면을 발행한다.

신문사라는 성화는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 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연소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결돼 온다. 그 과정에서 기자는 좁은 세상을 나와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도 배워나갈 예정이다.

불 속의 기자들은 두 가지의 끝을 선택할 수 있다. 일찌감치 자신의 능력을 한정 지은 채 스스로 소화(消火)하며 식어버린 잿더미로 남을 것인지, 자신이 받은 마중불처럼 그 불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며 타오르는 불꽃으로 함께 남을 것인지. 최선의 선택은 각자 다르겠지만, 기자는 끝까지 따뜻한 소화(小火)가 되고 싶다.

손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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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onn209@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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