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좋은 날
혼자여서 좋은 날
  • 안서진
  • 승인 2018.09.19 13:12
  • 호수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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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혼자 놀기

관태기: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인맥을 관리하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 권태로움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 표현. 관태기는 상대방에 권태를 느끼고 인간관계에 싫증이 난 시기를 뜻하는 단어로 요즘 우리 20대의 모습을 잘 반영한 신조어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사람들은 억지로 이어가는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에서 벗어나 마냥 외롭다고 부정적으로 인식됐던 ‘혼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혼자 밥을 먹고(혼밥), 혼자 영화를 보고(혼영) 때론 혼자 술도(혼술) 마신다.

이처럼 혼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사실 기자는 술은커녕 밥도 혼자서 먹어본 적이 없다. ‘나 혼자’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초라함과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강 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팀플,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로 ‘격하게 혼자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누군가의 눈치 없이 혼자서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며 나에게 자유로움을 선물하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예고편 봤어?’ ‘영화 보고 밥 뭐 먹지?’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영화관으로 들어갔을 테지만 오늘은 다르다. 우선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조금은 떨리는 마음을 안고 매표소로 향했다. 혼자 영화 보는 것이 처음이라는 기자의 수줍은 고백에 추천받은 자리 L열. 뒷자리 가운데 열이다. 총인원 1명이라는 숫자조차 신기해하는 기자가 귀여운지 매표소 직원이 ‘요즘 혼자 영화 보는 손님들이 많아서 아마 괜찮을 거에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평소 팝콘 없이 절대로 영화를 보지 않았던 기자지만 오늘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팝콘도 구매하지 않고 상영관으로 갔다.

 

▲ 영화 너의 결혼식
▲ 영화 너의 결혼식

 

점심을 먹기도 그렇다고 저녁을 먹기도 애매한 시간, 오후 3시. 애매한 시간대 때문인지 곧 상영이 끝날 후반기 영화 때문인지 영화관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양옆에 커플이 앉으면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머릿속으로 몇 번의 상상 회로를 돌려놨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을 만큼 영화관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헤어진 전 애인이 생각날 수 있으니 혼자 보는 것을 추천한다는 것으로 유명한 영화여서 그런지 오늘따라 혼자 앉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불이 꺼지고 영화는 시작됐다.

영화는 역시나 성공적이었다. 어느새 혼자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해 있는 기자를 볼 수 있었다. 풋풋한 고등학생의 연애에서부터 사회 초년생의 연애까지 달콤하면서도 쌉쌀하게 그려낸 영화 <너의 결혼식>. 어쩐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영화 포스터 뒤에 적혀 있던 ‘사랑은 타이밍이다’는 문구가 계속 맴돌았다. 혼자라서 다행이었고 혼자라서 좋았다.

달달한 영화 탓인지 왠지 모르게 썰렁한 속을 채워 줄 따뜻한 식사와 가볍게 술 한잔을 즐기기 위해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한 심야식당을 찾았다. 시끄러운 술집을 뒤로한 좁은 골목 사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 눈에 띄는 이곳 심야식당은 크지 않은 규모, 너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은은한 조명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혼자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좌석 대부분은 카운터와 주방을 보고 앉는 긴 바 형식이었다. 기자는 그중에서도 주방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혼술하기 좋은 `심야 식당'
▲ 혼술하기 좋은 `심야 식당'

 


뜨끈한 국물이 끌리는 새벽 1시 30분, 기자의 허한 속을 데워줄 따뜻한 우동과 시원한 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마감 시간이 새벽 3시이지만 손님이 없을 땐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는 사장님께서 기자가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라며 소소한 이야기를 건네주셨다. 영화 ‘심야식당’ 속 한 장면처럼 손님과 소통하려고 하는 사장님의 모습이 이곳 심야식당을 사람 냄새 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나만의 힐링 타임, 이것이 내가 혼술을 좋아하는 이유다’, 2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혼술남녀> 속 대사다. 누군가와 함께라서 좋은 시간도 있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분명히 혼자여야 한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는 잠시 내려놓고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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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j960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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