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수술과 윤리
대리수술과 윤리
  • 서민(의예) 교수
  • 승인 2018.09.20 12:58
  • 호수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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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리수술 vs 전공의의 수술

사례 1. 한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졌다...... 어깨 뼈 일부를 깎아내는 수술을 집도한 남성은 이 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영업사원 박 모 씨였다. 원장 이 모 씨는 수술이 시작되고 30분이 지난 뒤 사복 차림으로 수술실에 나타났고, 그 뒤 10여 분간 수술을 지켜보다 곧장 병원을 빠져나갔다. 경찰 조사에서 원장 이 씨는 “외래 환자를 진료하느라 바빠 수술을 집도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원장 이 씨와 영업사원 박 모 씨를 구속했다.

사례 2. S 씨에 따르면 S 씨의 오빠는 7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H 병원을 찾았고, 당시 마취과 과장을 특진 의사로 선택해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실에서는 레지던트 1년 차가 들어왔고 부분 마취를 하다가 마취가 잘 안 돼 전신마취를 하는 중에 심정지가 왔다. 결국 심폐소생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100일을 넘긴 아이의 지능에 팔과 다리가 마비된 반식물인간 상태로 침대에서 지내고 있다. 가족들은 선택진료 의사인 마취과 과장이 해당 수술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보고 받은 바도 없다고 주장하자 의료진을 사기죄로 형사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허위 청구한 선택진료비 70여만 원을 병원이 반환했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사례 1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수술을 한 경우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새로운 수술기구가 나왔을 때, 의사가 그 사용법을 영업사원에게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구를 사용하려면 환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니, 영업사원이 수술하고 의사는 옆에서 배우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법 위반이지만, 이 정도는 쉬쉬하며 넘어가 줄 수 있다. 그래도 의사가 수술실에 있으니,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사고에 대처하는 게 가능하며, 의사가 수술기구에 능통해지면 그 뒤부터는 자기 혼자 수술을 하면 된다. 문제는 사례 1의 이 모 원장 같은 이다. 그는 처음 몇 번이 아니라 계속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맡겼고, 심지어 자기는 수술장에 있지도 않고 다른 볼일을 봤다. 의료사고로 인해 이 모 원장의 비리가 드러났지만, 이런 의사가 더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사례 2에서 과장은 자기 대신 전공의에게 수술을 맡겼다. 전공의는 의사이면서 또 피교육생인지라 하나라도 더 배우고픈 욕망이 있기에, 수술을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애쓴다.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나중에 교수가 됐을 때 수술을 잘 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교수 대신 전공의가 집도하는 경우가 생긴다. 교수에게 수술을 받겠다고 선택진료를 신청한 환자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교육을 겸하는 대학병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저 마취과 과장처럼 아예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다. 전공의가 수술하더라도 교수가 옆에 있어야 문제점을 지적해 줄 수도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의료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데, 사례 2의 과장은 자기 책임을 저버렸다. 물론 전공의도 의사인 만큼 법적으로는 사례 1보다 낫겠지만, 과장의 윤리의식이 개차반인 것은 매한가지다. 자신은 그 수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하는 뻔뻔스러움을 보라. 단순히 선택진료비 70만 원을 돌려주는 것만으로 무혐의를 내릴 사안은 아니었다.

윤리를 버린 의사를 더 이상 의사라 부를 수 있을까. 대리수술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와 처벌도 필요하지만, 잠재적 환자인 국민들의 감시도 필요하다. 윤리를 의사 개인에게만 맡겨놓기엔 의사가 담당하는 일이 너무 중요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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