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힘
그림의 힘
  • 김선현 작가
  • 승인 2018.09.20 17:52
  • 호수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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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뇌를 자극하는 흑백 효과
▲ 바실리 칸딘스키, 30, 1937
▲ 바실리 칸딘스키, 30, 1937

 

 

고등학교 시험 볼 때 머리와 대학교 시험 볼 때 머리가 다르고, 취업 시험 볼 때 머리와 나이 들어 자격증을 딸 때 머리가 또 다르다고들 합니다. 좀 더 어렸을 땐 하루에 백 자씩도 외웠던 것이, 지금은 한 자 외우는 게 참 힘들다고 말이지요.

흔히 나이를 먹으면 ‘머리가 굳는다’고 하는데, 이는 뇌세포 간의 연결고리인 시냅스의 활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들 듯, 뇌세포 간 연결을 강화하는 다양한 뇌 자극을 주면 뇌의 노화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림을 활용하는 것도 그 방법이겠지요. 다음 페이지에 있는 칸딘스키의 흑백 그림을 봐주세요.

아직 색을 구별하지 못 하는 영유아에게 흑백 모빌은 두뇌 발달과 집중력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흑백은 확실한 색의 대비와 형태를 통해 강한 시각적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미술치료에서 집중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쓰는 색도 흰색과 검은색입니다. 예컨대 주의력 결핍 장애(ADHD) 환자들에게는 흰색 도화지에 검은색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고 칠하게 합니다.

스스로 만드는 흑백의 대비는 단순하고 선명하여 집중을 일으킵니다.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던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한 곳을 오랜 시간 보게 되는 것 또한 주의력 향상을 돕습니다.

칸딘스키의 <30>이 지닌 힘은 흑백의 효과만은 아닙니다. 그림에는 30개의 칸마다 어느 하나 딱 떨어지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문양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경직되기 쉬운 흑백 가운데서도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합니다. 동시에 칸들의 각진 테두리와 규칙적인 교차는 정신의 흐트러짐을 방지합니다.

사용한 색은 흑과 백, 두 가지뿐인데도 우리의 눈은 이 그림에서 무한한 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칸딘스키의 흑백은 경쾌하고 청신한 느낌마저 줍니다. 이렇듯 고정관념을 깨는 예술가의 창조적 시도는 우리에게 건강한 내적 긴장감과 창조적 경험을 제공하지요.

조금 곁가지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흑백의 혁명적 사용이라고 하면 저는 또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바로 패션 디자이너인 가브리엘 샤넬입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던 샤넬이 어릴 적부터 고아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면서 주로 접할 수 있는 색이라곤 흰색과 검은색뿐이었습니다. 샤넬은 이를 패션에 응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둡고 우울한 게 아닌, 밝고 긍정적인 것으로 말입니다.

샤넬은 손에 들고 다녀야 했던 가방에 처음으로 체인을 걸었고, 기존의 긴 치마 길이를 파격적으로 잘라버렸습니다. 여성을 집안과 정조개념에 가두는 정형화된 검은색의 가방, 치마가, 오히려 여성에게 손의 자유를, 사회적 해방감을 제공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샤넬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게 된 이유는 옷 그 자체보다도 옷의 바탕에 깔린,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혁명적인 생각일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이 그림을 보면서 ‘흑백’을 뛰어넘는 발상들을 자극받아보기를 바랍니다.

김선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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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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