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생각 속 가려진, 타투이스트들의 또 다른 ‘의미’
‘불량’한 생각 속 가려진, 타투이스트들의 또 다른 ‘의미’
  • 김미주·장승완 기자
  • 승인 2018.10.10 20:29
  • 호수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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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투, 의료인가 예술인가
▲ 타투이스트 로지 씨의 작업 현장
▲ 타투이스트 로지 씨의 작업 현장

 

Prologue

타투이스트, 1990년대까지만 해도 타투 시술과 관련된 고객은 대부분 조직폭력배나 유흥업소 종사자였고, 그들에게 새겨지는 것도 용과 호랑이처럼 무서운 그림이였다. 이는 ‘차카게 살자’의 문신 종류로 사람들에게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최근 타투에 대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간판도 없는 이곳, 타투 시술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타투는 어느새 패션 액세서리이자, 개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길거리에서 타투를 한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현재도 아직 우리는 타투가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에서 올해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타투’ 인식을 조사한 결과, 65.2%가 ‘타투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에 답해 4년 전 동일 질문의 결과인 45.7%보다 이러한 인식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코리아 타투’, ‘K-TATTOO' 라 불릴 만큼 세계에서 한국의 타투 인지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타투 시술은 현행법상 의료인만 가능해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에 본지는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타투이스트들을 만나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지의 예술에서 음지의 예술로

포근한 햇빛을 뒤로한 채 지하로 향하면 습기를 머금은 곰팡이 냄새가 반긴다. 안양역 골목 지하에 위치 한 타투 시술소, 간판도 없는 곳이지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은은한 조명 아래서 5명의 사람이 몸에 그림, 글자 등을 새기고 있었다.

‘살갗을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물감으로 글씨, 그림, 무늬 따위를 새김. 또는 그렇게 새긴 것.’ 헤이나(31) 씨는 이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4년째다. 이전에도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교 때 처음 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응원을 보냈던 부모님은 4년 전부터 그녀가 하는 일에 냉담해졌다. 캔버스에다 그리던 그림을 사람의 살갗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왜 그림을 살갗에다 그리고 싶어졌나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던 평범한 그가 ‘낯설고’, ‘일반적이지 않은’ 불법의 현장으로 들어간, 비밀스러운 계기가 궁금해졌다. “우연히 친구가 발목에 한 타투를 봤는데 예쁘더라고요. 관심이 갔고,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처음 시술을 한 손님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하더라고요. 그림을 그렸을 때는 그런 적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잠시 예전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올라가던 그의 입가는 곧바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이해는 되지만 씁쓸하죠. 후회는 없지만 씁쓸해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떼는 그녀.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수입도 괜찮아요. 입소문 타고 손님들도 꾸준히 오시고요. 제가 씁쓸한 건 사회와 사람들이 탐탁지 않게 본다는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타투 시술을 받던 손님이 받아쳤다. “어? 저도 그래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 몸에 새기겠다는데 왜 양아치 보듯 하냔 말이지.” “아무래도 조폭들이 문신을 많이 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기자의 질문에 손님이 답했다. “편견이죠. 그거 알아요? 제 직업이 사회복지사예요.” 순간 작업장 내에 웃음이 터졌다. 맞은편 테이블에서 시종일관 찡그린 얼굴로 타투 시술의 고통을 감내하던 손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사회복지사 A 씨가 말을 이어갔다. “지금 제 팔뚝에 새기는 타투의 의미도 그래요. 3년 전에 세상에 나온 소중한 제 딸의 세례명이거든요. 제 딸을 신앙 안에서 최선을 다해 키우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랄까요. 그런데 당분간 반팔은 못 입게 생겼어요. 아무래도 문신한 사회복지사는 아직 좀 그렇잖아요.” 타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타투 작업은 고객들이 타투이스트들의 SNS 계정을 통해 도안을 보거나 자신만의 의미가 담긴 그림을 가져오는 도안 의뢰로 시작된다. 도안을 확정하고 주의 사항에 대한 설명을 마치면 타투이스트들은 청결을 위해 의뢰자의 피부를 알코올로 소독한다. 감염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단계이다. 이후 타투이스트는 전사 작업을 통해 피부에 밑그림을 그린다. 전사 작업을 완료한 후 30~40분 정도가 지나면 본격적인 타투 작업이 시작된다. 작업에 사용되는 바늘은 모두 일회용이며, 작업하다가 바늘이 벌어져 여러 번 교환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바늘에 극소량의 잉크를 묻힌 후 피부에 점을 이용한 선을 긋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며 완벽한 도안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땀을 흘려가며 의뢰자의 몸에 타투를 새긴다.

끝나지 않은 여정을 향해 훨훨 날아가기 위한 날개짓

타투이스트 로지(31) 씨는 홍익대학교 인근에 공동 작업장을 마련해 타투 시술을 하고 있다. 역시나 어두운 음지로 들어서 수많은 문을 거쳐야지만 그녀의 일터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작업장은 수많은 타투이스트들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훨훨 날아라. 제가 생애 처음으로 시술한 타투의 의미에요.” 그녀가 입을 뗐다. “포르투갈에서 만난 스승이자 친구가 돼지껍데기에 단 2번 연습한 저에게 타투 시술을 하는 것을 허락해 줬어요. 국적도 다르고, 만난 지도 오래되지 않은 저에게 영원히 남는 타투를 하게 해줬다는 것이 굉장히 뜻깊은 감동이었죠.” 그녀는 그 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원래 타투라고는 전혀 모르는, 공공기관 홍보팀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중 싱가포르의 무역회사로 이직을 결정했고 기다리던 비자발급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충동적으로 포르투갈로의 여행을 결심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하던 중 성당에서 받은 도장을 발목에 타투로 새기게 됐다. 작품을 다른 사람 몸에 새기는 것, 그것도 영원히 남게 하는 일에 큰 매력을 느꼈고 그렇게 운명적으로 타투에 빠져들었다.

로지 씨는 타투를 ‘끝나지 않은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타투 시술을 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집중력, 완성된 타투를 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만족해하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취재가 끝난 후 다시 여러 개의 철장 문 뒤에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로 나왔을 때 로지 씨의 말을 다시 곱씹어볼 수밖에 없었다.

 

▲ 타투 영업소 내부
▲ 타투 영업소 내부

 

‘의료’와 ‘예술’의 경계에서

타투는 받는 목적에 따라 무궁무진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 패션 아이템으로의 활용부터 특별한 사연을 담아내기까지, 사람들은 타투에 점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패션타투협회 임보란 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타투로 “어린 딸의 귀에 붙어 있는 골진동 보청기가 안쓰러워 찾아온 아빠에게 같은 자리 같은 모양의 보청기를 문신으로 해준 것”이라며 “아빠는 어린 딸이 자라면서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가 금지된다. 타투 시술은 의료행위로 간주한다. 의료인엔 간호사, 조산사, 의사 등이 속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의사만 합법적으로 문신시술을 할 수 있다. 의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 중에 타투이스트 영업 등록을 한 합법적 타투이스트는 10명 미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300만 회 가량의 타투 시술이 진행되는데, 10명이 모든 시술을 감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불법 타투 시술이 성행해도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타투 합법화의 논쟁은 ‘타투를 의술로 봐야 하는가 예술로 봐야 하는가’에서부터 시작된다. 2016년 말 정부가 타투이스트를 신 직업군으로 선정하고 육성할 방침을 밝히면서 기대감을 품었으나 관련법의 개정 등 후속 조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타투의 실태와 현행법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 법적으로 문신 자체를 의료라고 하지는 않지만, 문신을 위한 침습 행위가 보건과 위생의 영역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문신 시술 행위를 의료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바르다고 한다. 한국패션타투협회 임 회장은 “타투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위생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pilogue

타투, 우리나라에서는 문신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 단어는 왠지 모르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그렇기에 타투이스트 또한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낯선 인생의 역사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타투이스트는,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선생님, 의사, 과학자 같은 직업과 같이, 그들은 그저 타투가 좋아서, 매력적이어서, 보람 있어서 타투이스트가 됐다.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꽤 분명해 보였다. 전 세계에서 비의료인에 의한 타투 시술이 불법인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한국타투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타투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법이라는 그늘에 갇혀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타투는 불량하고 위험한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 타투에 대한 경직된 생각을 잠시 내려놓아보는 것은 어떨까. 인식의 변화부터 시작한다면 적절한 규제가 더해져, 타투 작업장에 햇빛이 들어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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