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를 둘러싼 대학가의 딜레마
족보를 둘러싼 대학가의 딜레마
  • 이병찬ㆍ김민제 ㆍ장민수
  • 승인 2018.10.10 18:14
  • 호수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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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우리 대학에 재학 중인 A 씨는 과 동아리에서 선배들이 전공 강의 족보를 준다는 얘기를 듣고 족보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평소 학과 활동에 참여하지 않던 그에게 족보 구하기란 막막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의 한 게시판에서 족보를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해당 강의의 족보를 구매했다. 족보를 구한 A 씨는 만점을 받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널리 퍼진 족보로 인해 너무 많은 만점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교수님은 재시험을 진행했고, 결국 그는 족보 없이 열심히 공부한 학우들에게 밀려 낮은 성적을 받고 말았다.

 

 

# 대학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족보


 

주요 강의 내용을 정리 및 요약한 필기 노트, 기존에 출제됐던 시험문제를 바탕으로 제작한 기출문제나 예상 답안 등을 통칭하는 은어인 족보는 매 학기 시험 기간만 되면 뜨거운 감자다.
 

족보는 출제 경향과 시험 유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공유되는 경로가 매우 폐쇄적이고,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단기간 내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어 족보를 얻지 못한 다른 학생들과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본지는 족보 문제에 대한 학우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우리 대학 학생 20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족보를 인지하고 있다는 학생은 93.6%(189)으로 대다수 학생이 족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평소 족보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다는 답변은 45%(91), ‘족보를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는 답변이 38.6%(78)로 대학 사회 내에서 족보가 꾸준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아는 사람만 안다, 그들만의 족보
 

 

위의 가상 사례처럼 족보 하나로 학점이 결정되는 경우까지 생겨나면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족보 사용 관련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B 씨는 처음 접해보는 유형의 학교 시험이나 문제 분석이 어려울 때는 선배에게 받은 족보를 살펴보면서 시험 문제의 기출 경향을 파악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또 족보를 물려준 적이 있다는 학생 C 씨는 시험문제를 그대로 가져다주지는 않았지만, 강의 내용을 정리 및 요약한 필기 노트를 후배에게 준 적이 있다튜터링 활동 중에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답했다. 이렇듯 족보를 가진 학생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시험에 대비할 수 있게 되지만, 이는 족보를 얻지 못한 학생들은 그렇지 못해 족보 유무에 따라 성적 편차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곧 시험의 형평성 문제로 직결된다.
 

앞선 설문조사 결과 족보를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학생 중 특정 집단 내 공유(학교 선배, 동아리, 과 모임 등)’를 통해 족보를 입수했다는 학우들이 86.3%(173)으로 족보의 입수 경로가 폐쇄적임이 나타났다. 족보로 인해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는 김문주(정치외교·1) 씨는 복학생들이 받은 족보가 실제로 시험문제와 똑같이 나와 피해를 본 적이 있다족보를 사용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해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장시혁(동물자원·3) 씨는 평소 학과 활동을 하지 않는데 족보는 학과 활동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만 공유된다며 성적 평가에 공부 외의 다른 요소가 개입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 끊기 힘든 족보의 사슬
 

 

그렇다면 족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으로 시험문제의 반복적인 출제와 교과과정이 크게 바뀌지 않는 대학 강의의 특성을 들 수 있다. 이채린(영어·4) 씨는 시험문제의 유형과 내용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매번 문제를 새롭게 낸다면 족보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비슷한 문제가 반복 출제되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교양학부 소속 A 교수는 많은 교수님이 족보로 인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해당 학기의 시험 유형이나 문제를 매년 다르게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학문의 특성상 중요한 내용은 변화하지 않다 보니, 몇 학기 걸러 반복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 마음속 준법뿐 아니라 저작권법마저 어기는 족보
 

 

양심과 준법을 어기는 족보는 저작권법마저 어기는 불법행위이다.저작권법51항에 따르면, 2차 저작물이란 원 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뜻한다. 다시 말해. 족보는 1차 저작물에 해당하는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2차 저작물에 해당한다. 또한 2차 저작물은 기본적으로 1차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할 수 없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저작권법1362항에 따라 저작물 공유 및 유포 행위가 저작권 침해로 인정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 대해 한수빈(도시계획부동산·1) 씨는 시험의 유형이나 교수님의 성향을 알아 성적 향상에 도움을 얻기 위해 족보와 같은 자료 공유가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대부분의 학생들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료 공유를 하므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서 깊은 족보, 우리의 선택은
 

 

현재 교칙에 족보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시험문제 출제 규정이나 평가 규정은 없다. 천안캠퍼스 학사팀 이길현 팀장은 족보처럼 학생 평가에 관한 문제는 교수의 재량이기에 학교 차원에서 권고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어렵다교수 본인의 양심과 학생 차원의 꼼꼼한 강의 평가로 족보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며 대학 구성원 모두가 인식개선을 통해 족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서민(의예) 교수는 매 시험 문제를 새로 내고, 교수가 직접 관련 기출문제를 제공해준다면 학생들이 유형을 참고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숙지하기 쉬워질 것이라며 학생들이 족보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Epilogue
 

학점 경쟁이 점점 과열되고 있는 대학 사회 내에서 공정한 경쟁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요소이다. 족보는 누군가의 노력을 쉽게 가져가려는 것이므로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또한 대학은 지식의 요람이자 학문의 전당 그리고 사회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만큼 법적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저작권법을 준수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족보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학생들은 양심적인 경쟁을 하고 학교는 족보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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