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를 어떻게 할까?
흉부외과를 어떻게 할까?
  • 서민(의예) 교수
  • 승인 2018.10.16 21:26
  • 호수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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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흉부외과 수난시대
▲출처: 국민일보
▲출처: 국민일보

 

“경운기에 깔린 남자가 흉곽 출혈이 심해 당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흉부외과 교수에게 연락했더니 다른 수술을 하고 있었다. 교수는 두 시간 만에 나타났지만, 이미 환자가 숨진 뒤였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이 쓴 『만약은 없다』에는 흉부외과 의사가 없어서 겪었던 사건들이 나와 있다. 남궁인이 근무하는 병원에는 흉부외과 교수가 딱 두 명, 전공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흉부외과를 하겠다는 전공의는 10년째 끊긴 상태다. 교수들은 외래와 수술은 물론 응급환자에 대비해 당직까지 서야 한다. 위 사례처럼 급한 환자가 왔는데 두 명 모두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환자는 언제 올지 모르는 의사를 기다리거나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 다른 병원이라고 사정이 낫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은 젊은 의사들이 흉부외과를 피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정신과, 영상의학과, 성형외과 등 소위 인기과들로 몰린다. 이와 관련된 극단적인 실화를 보자. 모 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들이 자기 과를 도는 인턴에게 한우와 생선회 등 고가의 음식을 매일같이 사줬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먹어”라는 말도 은근슬쩍 흘렸다. 인턴이 일하려면 교수가 “아냐, 내가 할 테니 넌 쉬어”라고 하기도 했다.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결국 그 인턴은 흉부외과에 지원했다. 10년 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어렵사리 들어왔다고 해도 결말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전공의 중 흉부외과를 그만두고 군대로 도망치는 이들이 있어서다. 여기에 대해 “의사가 될 사람이 힘들다고 그러면 되나?”라고 혀를 끌끌 차는 건 쉬운 일이다. 젊은 의사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흉부외과를 기피하느냐고 말이다.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57%나 되는 의사들이 ‘취업이 안 돼서’라고 답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흉부외과가 인력난에 시달린다는데 그들은 왜 취업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사정은 이렇다. 전공의를 마치고 남자인 경우 군대를 다녀오면, 그리고 얼마간의 전임 생활을 하고 나면, 교수가 되거나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병원에 취직해야 한다. 흉부외과 수술을 하려면 마취과 의사와 수술을 도울 다른 의사와 간호사가 있어야 하니 큰 병원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런데 큰 병원에서는 흉부외과 교수를 많이 뽑는 대신, 최소한의 인력만 유지하려 한다. 왜일까. 흉부외과 자체가 그다지 수익이 나지 않아서다.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만, 흉부외과에서 수술할 때 받는 돈전문용어로 ‘수가’는 그리 많지 않다. 몇 시간씩 걸려야 하는 심장 수술이 간단한 성형수술보다 받는 돈이 적을 정도다. 흉부외과 의사가 많아질수록 병원이 적자를 보는데 흉부외과를 키울 병원이 있을까? 특히 지방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해, 흉부외과 의사가 아예 없는 곳도 제법 있다. 흉부외과의 취업난은 바로 이로 인해 벌어진다.

이런 현실은 살 수 있는 환자를 죽게 만든다. 지방에 사는 이가 큰일을 당하면 몇 시간씩 걸려 서울의 큰 병원에 가야 하니까. 다음 통계를 보자. “연세대 강남세브란스 병원이 지난해 실시한 대동맥 응급수술 100건 중 서울 환자는 31명이다. 나머지 69건은 지방환자다.” 소위 골든타임을 놓치는 환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를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술 수가를 높여서 병원들이 흉부외과를 더 키우도록 유인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부도 이런 일을 하지 않기에, 의사들의 흉부외과 기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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