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에서 배우는 양성평등의 해법
‘오래된 미래’에서 배우는 양성평등의 해법
  • 박성순(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8.11.14 15:28
  • 호수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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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교양학부) 교수
        박성순(교양학부) 교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는 젊은 날 자신을 중매하려던 친척 할머니께 다음과 같은 결혼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재산을 따지지 말 것, 둘째 여자라도 학식을 지닐 것, 셋째 서로 만나서 마음이 맞는지 알아보고 나서 결혼할 것 등이었다. 당시 봉건사회에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김구는 부모들 간의 정혼이라는 이름으로 당사자들의 의사가 배제된 강압적 결혼, 돈에 의해 사고파는 매매혼, 그리고 여성의 무지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편견 등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최준례를 만나, 구습에 따른 형식적 결혼이 아닌, 진정한 동지적 결합에 성공하였다.

최근 우리 사회는 미투 운동으로 격발된 여권 신장의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그런데 그 속에 남성 위주의 봉건적 유제에 대한 원망이나 울분 같은 것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여자를 단지 남자들의 종속물쯤으로 보는 여성 폄하적 시각은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17세기 이후 경화된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구축된 것이다. 가부장제적 질서, 신분차별, 남녀차별, 가문의 구별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말폐가 마치 우리민족의 타고난 전통인양 오해되고 있다.

조선 전기뿐 아니라 고려시대로 올라가면 양성평등은 당연하고 일반적인 사회적 관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양민 남녀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만나 결혼할 수 있었고, 신랑은 신부 집에 가서 결혼하고 처가에서 살다가 친가로 오거나, 따로 가정을 꾸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가 ‘시집’ 간 게 아니라, 남자가 ‘장가’ 가던 시절이었다. 호적에도 남녀 순서가 아니라 나이 순서로 이름을 기재하였고, 여성이 호주가 되는 일도 있었다. 재산은 남녀 균분 상속이 원칙이고, 자녀들이 돌아가며 부모의 제사를 지냈다. 사위가 처가의 호적에 오르거나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사위나 외손자도 음서의 혜택을 받았다. 여성의 재가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재가해서 낳은 자식도 사회적인 차별을 받지 않았다.

서양의 주요 국가들이 대부분 20세기 초반에서야 여성들에게 비로소 선거권을 부여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부장제를 뒷받침하던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 200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려시대의 양성평등은 괄목할 만하다. 이는 인류가 지향해온 근대성이 이미 오래전 우리의 역사 속에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진보와 양성평등을 위해서라도 소중한 우리역사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양성평등의 지혜를 우리 역사에서 찾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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