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갈등이 끝나지 않았다. 카풀 도입으로 택시 업계는 반발하고 카카오는 물러서지 않는 날의 연속이었다. 공유경제가 불가피한 세계적 흐름이라고 여겨지면서 정부도 차량 공유 서비스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어 정부는 제도 도입에 따른 택시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요금 자율화, 택시 기사 월급제 도입과 같은 택시 업계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지난달 19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해 카카오 카풀 찬성이 절반을 넘는 5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카풀 서비스를 이용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서비스 시작 후에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에 카풀을 직접 체험하고 카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솔직하게 전해주고자 지난 9일, 오전 8시 모두가 출근하는 그 시간 기자는 카풀에 도전해봤다.
시작도 전에 기대 0%, 걱정 100%
카풀을 체험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지인이 전해준 카풀 후기는 두려움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크루(운전자)의 성희롱에 매우 불쾌했다’, ‘등록된 사진과 다르게 생겼다며 나를 평가했다’. 이외에도 라이더(탑승자)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후기가 넘쳐난다. 기자는 문득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덜컥 걱정이 됐지만 논란의 중심에 있는 카풀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생하게 전하려면 직접 이용해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카풀 앱을 설치했다.
기자가 다운로드 받은 카풀 앱은 카카오에 인수된 ‘럭시’다. 이름, 전화번호, 생년월일 등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간단하게 회원가입이 완료된다. 또 페이스북, 카카오톡과 각각 연결할 수 있어 쉽게 가입이 가능하다. 여기서 기자는 의문이 생겼다. 라이더의 등록 절차가 이렇게 간단하다면 크루의 안전은 누가 지켜주는 걸까. 혹시 크루의 등록 기준도 이렇게 간단할까.
우리의 안전은 ?
현재 서비스 준비 중인 카카오 카풀의 운전자 등록 조건은 준중형 차량 보유자(경차 소형차 렌터카 불가), 차량 등록일이 만 7년 이하인 차량, 자동차보험 ‘대인배상 2’ 가입이다. 또 차량 종류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차량 정면 사진과 운전면허증, 자동차등록증, 자동차보험증 등의 서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 카풀 크루의 직업이나 직장, 범죄 경력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카오 모빌리티 관계자는 “범죄 경력 조회는 정부가 허가한 분야만 가능한데 아직 카카오 카풀은 범죄 경력 조회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극단적인 예시로 카풀을 처음 이용한 사람이 음주 운전 전과가 있는 크루를 만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조금은 불편한 시작
기자는 럭시를 실행했다. 회원가입을 마무리할 때쯤 ‘출발지에서 원활한 탑승을 위해 운전자가 확인하는 정보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사진을 등록하라는 창이 떴다.
사진 등록을 끝내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멘트와 함께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는 화면이 뜬다. 럭시의 경우 옆자리와 뒷자리 중 더 선호하는 곳, 트렁크 사용 여부, 운전자와의 대화 여부, 음악을 들을지 말지 등 세부적인 선택이 가능한 탑승 설정 서비스도 있다. ‘편안한 뒷자리’와 ‘즐거운 대화해요’를 선택한 기자는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했다. 가격은 약 3천70원, 택시를 탄다면 4천 원 정도 드는 거리였다. 예상과 달리 가격은 택시와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다만 아직 크루가 많지 않은 탓인지 카풀 요청 대기시간은 꽤 긴 편이였다.
크루와의 매칭은 30분이 더 지난 다음에야 성공했다. 앱을 통해 크루의 차종과 차번호와 함께 크루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2분쯤 지났을까, 왼쪽에서 크루의 차 번호판이 보였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 있었지만 혹시 못 찾을까 싶어 손을 흔들어 라이더임을 알렸다. 편안한 뒷자리를 선택한 기자는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고 탑승했다.
기자의 첫 카풀 크루인 한강준(49) 씨는 “카풀 드라이버가 된 지 1년이 다 됐다”며 “크루로 등록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매우 낯설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태우는 게 익숙해졌고 퇴근 시간을 3개월째 함께하는 라이더 친구도 생겼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카풀을 일상의 활력으로 생각하는 그도 불편한 라이더를 여럿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가격이 왜 택시랑 차이가 없냐며 기름값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따지던 손님부터 목적지를 잘못 설정하고서는 화를 내던 손님 등. 그는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한 씨는 자신이 카풀 크루이다 보니 카풀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택시에서도 가끔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데 카풀은 더 심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현재 기준이 모호하고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카카오가 서비스의 안전에 대해 체계적인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시행되고 나서 큰 어려움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업계의 강경한 반대···걱정되는 건 카카오의 파급력
지난달 17일, 택시업계는 파업을 선언하고 19일까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총파업을 진행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에서 카풀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13일 만에 다시 진행된 생존권 사수 노력이었다. 택시 단체들은 왜 길거리에 나섰을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카카오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카카오톡’부터 ‘카카오택시’, ‘카카오버스’까지 손을 뻗으면서 대중교통시장의 선두로 나섰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가진 카카오가 카풀에 나서면 소규모 기업이 진행해왔던 택시 시장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크게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택시업계의 입장이다.
또한 택시업계는 카풀 서비스가 카카오가 주장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규정된 예외 조항이 아니라 자가용으로 영업을 진행하는 불법 운송이라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유료 카풀이 합법이다. 하지만 택시업계 측에선 기존의 카풀은 자가용의 수를 줄이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타고 다니며 수고비를 받으라는 의미로 마련된 제도였다며 전혀 모르는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영업 행위와는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택시 회사들이 ‘운송기준금’이라는 명목으로 이름만 바꿔서 법을 피해가고 있는 ‘사납금 제도’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하루에 회사 몫으로 넘겨야 하는 일정 수당이 있기 때문에 택시 기사의 월 급여는 밤낮 일하고 초과 수당을 합해도 월 2백만 원을 조금 넘는다. 이 때문에 단거리 고객을 거부하는 택시기사와 승차거부 때문에 카풀을 사용하고자 하는 시민의 상황은 악순환이 반복됐다.
경기도에서 택시를 운영 중인 구범중(56) 씨는 “작은 기업의 카풀은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위협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은 다르다”며 “카카오가 안전 문제를 잘 해결한다면 충분히 택시업계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한편 택시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카풀을 막아서려는 것은 아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의 일원인 박현정(61) 씨는 “카풀 영업은 불법이고 우리의 투쟁은 정당한 것임에도 시민들에게 지지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택시업계도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pilogue
카카오 카풀 T 크루 사전 가입이 시작되자 한달 만에 무려 10만 명이 가입했다. 크루 가입 비율도 매우 높지만, 라이더의 가입 비율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사람들이 카풀의 등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간의 교통수단, 특히 택시에 대한 불만.
민원을 처리하는 경기도콜센터에 따르면 택시 불편신고 중 가장 많이 제기되는 민원은 ‘승차거부’이다. 이번 해 승차 거부에 대한 민원은 4천200건 접수됐다. 하지만 증거불충분 등의 사유로 처분 건수는 400건으로 처분율이 10%도 못 미치는 수치다. 지난 2015년, 택시 삼진아웃제도가 마련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승차 거부 사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으며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는 시민들이 여전히 불편함을 겪고 있으며 택시의 승차 거부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더 모색돼야 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