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궁전을 지은 황제 -16- 안나 이오안노브나
얼음 궁전을 지은 황제 -16- 안나 이오안노브나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12.17 15:47
  • 호수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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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러시아의 안나 이오안노브나는 이반 5세의 딸이었습니다. 이반 5세는 유명한 표트르 대제의 형이었으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공동 통치를 했고, 얼마 후 사망하면서 표트르 대제가 유일한 황제가 되었습니다. 표트르 대제도 아주 흥미진진한 황제이지만 현시점에서 우리의 문제는 표트르 대제의 왕위를 받은 유일한 손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 이제 후계자는 공주들만 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도록 통치했던 표트르 대제의 딸들이 왕위에 오르느냐, 어찌 되었든 형인 이반 5세의 딸들에게 왕위가 넘어가느냐의 문제 속에서 허수아비 왕을 올려놓고 권력을 탐하고자 했던 최고 추밀원 위원들은 평생 조신하고 정숙한 아내가 될 교육만을 받은 안나 이오안노브나를 왕위에 올리기로 계략을 짰습니다. 안나는 본인의 권력을 제한한다는 추대 조건에 서명하면서 왕위에 올랐지만 사실 그녀는 추밀원이 생각한 대로 얌전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안나는 황제가 되자마자 주변 신하들의 지지로 최고 추밀원을 해체해버리고는 비밀경찰 역을 하는 친위대를 만들어 정적을 숙청해나갔습니다.
 

▲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안나 여제
▲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안나 여제

 

이제 권력을 잡았으니 성군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권력의 맛에 취한 안나는 괴상한 놀이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새벽에 소방 종을 울려 사람들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귀족들에게 입으로 토끼에게 먹이를 주라고 시키거나 바닥을 기어 다니라고 명령하기도 했죠.

▲  얼음 궁전
▲ 얼음 궁전

 

안나가 행한 가장 유명하고 괴상한 일은 ‘얼음 궁전의 결혼식’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았던 골리친 공작은 동방정교회가 아닌 가톨릭 신자인 이탈리아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안나는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이 결혼을 두고 배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 신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자 안나는 이 기회를 틈타 복수를 하기로 했죠.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던 것은 아닙니다) 안나는 나이 든 공작의 지위를 어릿광대로 바꾼 후 가장 못생긴 하녀와 재혼하라며 첫날밤을 보낼 멋진(?) 궁전을 지어주었습니다. 궁전은 높이만 20m에 달하였으며 궁전을 비롯해 안의 인테리어까지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졌었다고 합니다. 벽과 기둥뿐만 아니라 나무, 종달새, 의자, 침대, 심지어 벽난로와 그 안의 불까지도 말이죠. 정성이 대단하네요.

만족한 안나는 골리친 공작과 새 신부를 광대로 분장시키고 코끼리에 태운 뒤 서커스 동물들과 행진을 시킨 후 얼음 궁전 안에서 발가벗고 하룻밤을 보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매서운 겨울에 발가벗고 얼음 위에서 자야 하다니,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지만 새 신부는 결혼 선물로 받은 진주 목걸이를 문지기의 낡은 코트와 맞바꾸는 기지를 발휘했고, 덕분에 부부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힘겹고 추운 밤을 함께 보낸 덕분인지 안나가 1년 뒤에 사망한 뒤에도 공작과 새 신부는 쌍둥이도 낳고 알콩달콩 오순도순 잘 살았다고 합니다.

왕위에 오른 지 고작 10년이 된 황제, 안나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을 때 그녀는 후계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후손에게 권력을 주고 싶으나 자식이 없었던 안나는 왕위를 조카의 아들에게 넘겨주기로 합니다. 문제는 그 아들이 아직 태어난 지 백일도 되지 않은 아기라는 것이었죠. 안나는 갓난쟁이를 왕위에 올려놓고 세상을 떠났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이모할머니의 잘못된 결정에 황제가 된 아기, 이반 6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위에서 쫓겨나 평생 감금된 채로 살다가 고작 23살의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얼음 궁전에 가둬 사람을 얼려 죽이려던 계획도, 아버지의 후손을 왕위에 남기려던 계획도 실패한 안나는 러시아를 쥐락펴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괴상한 짓을 즐기던 이상한 황제로만 이름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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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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