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유행(溪谷遊行)
계곡유행(溪谷遊行)
  • 유채은(한문교육·2)
  • 승인 2019.03.05 23:27
  • 호수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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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계곡은 소리가 생명이다

몸이 날렵한 내가 난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붕 날아서 건너듯이

무지개는 으랏차 기합을 넣으며

간단히 벼랑을 뛰어 건넜을 때

급히 좌회전하던 크낙새 한 마리가

달려오는 맞바람과 맞닥뜨려

크게 놀라며 가지 위로 불시착했다

크낙한 울음이 계곡 전반(全般)에 흐른다

이것은 계곡의 유행!

거룩한 공명(共鳴)을 이룩하는 양안(兩岸)의 깊이와

우묵한 거처에 웅성대는 물의 화음,

한 장 씩 뜯겨 나뭇가지에 나부끼는

숲의 잠언을 읽으며 계곡도서관

맨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디딤

디딤 내려오는 바람의 중얼거림,

대낮 하늘빛에 옷이 젖어 떨다가

이윽고 밤이 되었구나

고독에 쓱 밑줄 긋는 별똥별 아래

근엄한 사서가 서가를 걸어가듯

나는 아쿠아 슈즈를 신고 계곡을 종단한다

이것은 계곡의 유행이자

회귀의 사조(思潮),

나는 끝내 계곡을 집에 들이지 못했으나

沼처럼 둥근 방에 앉아

바닥에 막 갈앉는 나뭇잎인양

세속 곁에 바투 붙인 어깨를 흔들며

삽짝 바깥을 그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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