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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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영 수
  • 승인 2004.03.11 00:20
  • 호수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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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모델과 따라하기

김 영 수
<문과대학·인문학부·국어국문학전공>

캠퍼스에도 봄은 찾아왔다. 약간은 쌀쌀하지만 이곳 저곳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엊그제는 때아닌 3월 폭설이 내렸다. 새학기를 맞아 우리에게도 서설이기를 기원했다. 낯선 신입생들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가 하면 중·노년의 만학도들이 어색하지만 들뜬 표정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기도 한다. 새로운 변화의 표정들이다.
필자는 평소 사람을 세 가지(셈이 깨끗한가,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가, 언행이 일치하는가) 기준으로 평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언행일치이다. 이는 성인들도 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는 그저 시늉만 낼 뿐이다. 두 번째로 어려운 것은 돈이다.
돈은 귀하고 누구나 소중히 여긴다. 인간 만사가 돈에 울고 웃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주변을 살피면 돈을 대하는 모습도 대략 세 부류가 있다. 첫째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사재를 터는 경우이다. 모임이나 조직, 기관을 위해 쾌척하면서 보람을 찾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매우 멋진 사람이다. 갑부가 아니라도 우리는 가끔 미담을 듣고 있다. 허생전의 허생과 그에게 조건없이 돈을 빌려준 변부자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임춘이 공방전(孔方傳)에서 왕이보의 고사를 인용하여 돈을 ‘아도물’(阿堵物:저 것)이라고 말했듯이 돈에 있어서는 초연하고 깨끗한 입장이다.
두 번째는 남의 돈을 제 돈으로 생각하며 사는 경우이다. 검은 돈이나 불법 비자금, 눈먼 돈, 공금을 유용하는 행위,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것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개 눈치가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돈을 매개로 사귀는 사귐을 이른바 ‘시정교자’(市井交者)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급자족하는 형태의 사람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도움을 주지도 않으면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하는 소박한 형태이다.
돈은 양면의 날과 같아서 잘 쓰면 보람있고, 잘못 쓰면 사람을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러길래 돈은 돌고 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돈은 쓸 때 쓰고 아낄 때 아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는 바로 돈의 용도를 두고 한 말인 듯하다. 돈은 신경계나 혈관과 같아서 돌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다. 모든 조직은 하부 구조가 튼튼해야 건강하다. 발로 뛰고 벌어들이는 사람이 많아야지 결재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비효율적이다.
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지금 두 가지에 힘을 기울일 때라고 본다. 첫째는 이미지 제고이고, 둘째는 내실화의 문제이다. 학교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첨병은 수위와 교환원, 조교, 홍보실이다. 학교 당국은 그들이 친절하고 긍지에 찬 근무에 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수위는 학교를 방문한 모두에게 멋진 복장과 친절로 대해야 한다. 교환원의 친절은 물론이고, 조교의 제자리 찾기도 중요하다. 교수들의 수업보조와 학업수행이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저임금의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상황에서는 학생과 교수를 도울 수 없다. 학생과 학부형 및 매스컴을 상대로 홍보하는 것 역시 긍지를 가지고 일하게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하부구조가 아니라 우리의 대표라고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실화의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학과(전공)의 활성화와 도서관 이용도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밑바닥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적극 지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지시나 요식행위로 끝내는 회의를 수 백번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권한이 위로 갈수록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시행착오가 거듭될 수 밖에 없다. 학생 한 명이 남아 있어도 도서관은 개방되어야 한다. 10여년 전 우리와 비슷한 레벨의 H대와 K대가 오늘날 일류 대학의 반열에 발돋움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이 든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누가 총장이 되고, 보직을 맡느냐가 아니라 수면 아래로 침몰하느냐, 아니면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느냐의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여기서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모두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필자만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나는 매학기 교수직원 연수회의에서 보직교수들의 희망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이번에는 신입생들의 수능 점수가 2-3점 올랐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간 우리는 경쟁률이 약간 올랐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해왔다. 결국 우리의 정책은 그동안 독자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하기와 현상유지였음을 되풀이해 온 것이다. 이같은 현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론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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