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역들을 알아보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역들을 알아보다
  • 박상엽 수습기자
  • 승인 2019.03.06 12:20
  • 호수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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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인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 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직후 건립돼 독립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한 민족 대표기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의 주축이 됐던 인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김구
김구 선생은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으로서 활동하다 이듬해 헌법을 제정, 임시정부를 위원제로 고치면서 국무위원이 됐다. 이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주도하는 등 광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갔다. 1945년 8월 15일 군사훈련을 추진하고 지휘하던 중 시안에서 광복을 맞이한다. 광복 이후에는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섰으며,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반대했다. 남북 협상 차 평양에 방문했으나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1948년 6월 26일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한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살림꾼, 윤현진
윤현진 선생은 1916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고향 양산에 돌아와 의춘학원을 설립하고 안희제가 주도했던 백산상회에서 전무로 활동했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차장을 역임하며 백산상회 자금을 독립자금으로 충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뿐 만 아니라 김구, 손정도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할 목적으로 의용단을 조직했고,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편과 역량결집을 위해 노력하다 같은 해 9월 과로로 서거하게 된다.

 

 

■ 임시정부 지키며 독립 토대 마련한 여성독립운동가, 연미당 선생
연미당 선생은 1930년 한인여자청년동맹회 임시위원으로 선출돼 한인여성들의 단합을 위해 노력했다. 3·1운동 이후 국내·외 애국부인회의 애국활동을 계승하고 여성으로서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 각 정파의 여성들과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대회를 개최했다. 연미당 선생은 한국독립당 제 2구에서 활동하며 주의와 정파를 초월한 통합운동을 추진하며 여성 독립운동계 통합에 솔선수범하다가 1946년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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