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회 대학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사막의 바다」
제 42회 대학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사막의 바다」
  • 정가온(문예창작)
  • 승인 2019.03.06 22:00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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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막에서 깨어났다. 추리닝 바지에 늘어난 티셔츠 차림이었다. 멀리서 뿌옇게 불어오는 바람을 보며 그녀는 내가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쩜 이렇게 현실 같담. 모래알이 우수수 떨어지는 얼굴을 더듬거리면서도 여자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머리가 욱신거리고 목이 무척 마르다는 감각뿐이었다.


어젯밤 그녀는 오징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다 그대로 잠들었다. 술 동무 대신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요즘 한창 유행하는 드라마 재방송이 나오던 게 기억났다. 남자주인공이 초능력자에 여자주인공은 태권도 사범인 로맨스 코미디였다. 평소 같으면 이미 본 화라도 처음 본 양 즐거워하며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제, 채 삼십 분도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몹시도 고단한 하루였던 탓이다.


여자가 건조한 코를 벌름거렸다. 말라붙은 코털과 딱딱한 코딱지가 느껴졌다. 먼지 때문인지 속눈썹이 무거웠고, 뺨과 목은 따끔따끔했다. 눈알에도 뭔가 굴러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팔에 묻은 모래를 털던 그녀가 문득 옷을 내려다보았다. 티셔츠에 ‘비연생명 20주년’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붉은악마를 연상시키던 이전에 비하면 색이 많이 바랬다. 여자는 그 옷을 집에서 입었다. 밥을 먹고, 트림을 하고, 잠을 잘 때.


3년 전 그녀는 회사 창립기념 체육대회에 참가했다. 간부의 눈에 들면 정규직이 될지도 모른다는 선배들의 말에 자원한 종목이 여럿이었다. 그녀는 장애물 경주며 이어달리기에 온 힘을 쏟았고,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다. 하지만 간부들은 그녀는커녕 체육대회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사장님은 이런 걸 왜 하신다고…….” 대회가 파하고서야 MC를 맡았던 차장이 중얼거리는 것을 언뜻 들었다. 여자는 허옇게 녹아내린 파운데이션과 판다 같은 마스카라 흔적만을 훈장으로 남긴 채 돌아와야 했다. 참가 기념 물티슈는 땀을 닦아내니 화하게 붉은 기가 올라왔다. 다음 날 선배들에게 따지자, 그들은 깔깔 웃으며 그걸 믿었냐고 되물었다. 여자가 두드러기 난 팔을 감췄다. 다음 해 창립기념일부터 회사는 정규직만 모아 호텔에서 행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가 그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 빵을 물고 달리기를 할 적에도 이렇듯 정신이 멍했다. 뻣뻣한 긴 머리를 손빗으로 대충 훑어 넘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수리를 달구는 뙤약볕과 달리 맨발로 밟고 선 모래가 서늘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태양 빛을 품은 사막은 거대한 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 위에 놓인 무엇이든, 이를테면 그녀도, 한입에 삼켜 일부로 만들어버릴 듯이. 여자는 아득히 먼 공제선을 쳐다보다 현기증이 나 뒤로 한발 물러섰다. 우우 하는 소리를 내며 모래바람이 울었다. 덜컥 겁이 났다.


무심코 바지 주머니를 더듬거리자 휴대폰이 만져졌다. 여자는 좁은 집안에서도 휴대폰을 꼭 챙겨 들고 다녔다. 혹여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이라도 고장 나면 고독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켠 여자가 화면을 응시했다. 8월 6일 수요일, 10시 21분. 평소대로라면 한창 전화통을 붙들고 고객과 씨름할 시간이었다. 반사적으로 팀장에게 전화를 걸려던 여자가 멈칫했다. 뭐라고 하지? 그녀는 지금껏 한 번도 무단결근을 한 적이 없었다. 생리통이 심할 때도 눈치가 보여 진통제만 꾸역꾸역 삼키며 일했다.


여자는, ‘저 지금 사막인데요…….’로 시작하는 몇 마디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떤 문장을 이어도 진정성이라곤 요만큼도 묻어나지 않았다. 팀장은 늘 텔레마케터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열변하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끊으려던 고객도 사로잡을 만한 진정성, 이 회사는 좀 다르겠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그런 진정성 말이야! 여자는 그때마다 진심이 없는데 어떻게 진정성을 담느냐고 생각했다. 지금은 진심이 있어도 진정성을 담을 수 없었다. ‘저 지금 사막인데요…….’


여자가 연락처의 스크롤을 쭉 내렸다. 자주 사용하는 연락처에 동네 치킨집과 애인, 회사 동료와 팀장이 떠 있었다. 그밖에는 고등학생 때 친했던 동창, 대학생 때 몇 번 같이 밥을 먹었던 선배,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 결혼 후 연락이 뜸해진 친구 등의 연락처가 잡다하게 뒤섞여 있었다. 여자는 부모님의 전화번호 위에서 잠시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러다 곧 마른 입술을 축이며 목록을 넘겼다. 500개가 넘는 연락처 중에서 그녀가 당장 전화를 걸 수 있는 번호는 하나도 없었다. 나 지금 사막이야, 사막에 떨어졌어. 여자는 그 말을 다른 것으로 치환해보았다. 나 지금 회사야, 일하고 있어. 나 지금 식당이야, 밥 먹고 있어. 여자는 말들의 무게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메신저함에 들어가려던 여자가, 마음을 바꿔 ‘뒤로 가기’를 눌렀다. 8월 6일 수요일, 10시 24분. 애인과의 기념일 알림이 떠 있던 자리에 ‘어플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오류 메시지가 대신 떠 있었다. 어제 애인은 시간을 좀 갖자고 말했다. 깍두기 국물 푼 돼지국밥을 휘휘 저으면서, 우리 시간을 좀 갖자. 일주년을 한 달 남겨둔 날이었다.


여자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걸어야 했다. 사막에 잡아먹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손차양을 만든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먼 곳에 바위인지 나무 밑동인지 모를 것이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일단은 저기까지 가보자고 다짐했다. 혹시 모르지, 오아시스가 있을지도……. 여자는 오래전 영화에서 보았던 오아시스를 떠올렸다. 야자수가 높게 솟은 그곳에서 주인공 일행은 목을 축이고 몸을 씻으며 서로를 달랬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 맹렬하게 물이 당겼다. 벌레처럼 옷 속을 굴러다니는 모래를 씻어내고, 엉킨 머리도 감고 싶었다. 그러나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도 목적지는 좀체 가까워지지 않았다. 발이 자꾸만 사막에 푹푹 잠겼다. 여자는 제 무게를 지탱하는 데 반, 앞으로 나아가는 데 나머지 반의 힘을 써야 했다.


얼마간 걸어서야 그녀는 자신의 목적지가 바위나 나무 밑동이 아닌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모래에 묻혀 상층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건물이었다. 힘을 쥐어 짜낸 여자가 걷는 속도를 올렸다. 가까이 갈수록 건물은 더 크고 거대하고, 비스듬히 기운 모양새로 변했다. 꼭 피사의 사탑처럼. 여자는 개중 가장 가까운 건물로 다가갔다. 4층 높이의 빌딩은 유리로 된 외벽이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여자는 흩어진 파편을 밟을까 멀리서만 안쪽을 기웃거렸다. 캐비닛이며 의자가 쓰러진 모습이 아무래도 사무실인 듯싶었다. 저기요! 여자가 소리쳤다.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누구 없어요!


모래바람이 휘잉, 하고 불었다. 여자는 왠지 건물의 외견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를 유심히 살피자 바닥에 떨어진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비연생명 전무 김태광’. 그곳은 다름 아닌 그녀의 회사였다. 예정대로라면 오늘도 지하철 손잡이에 의탁하여 출근했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여자는 생전 처음으로 회사의 상층부를, 그 겉면에 비친 자신을 목격했다. 깨진 유리에 얼굴이 반 토막 나 있었다.


일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상실감이 올라왔다. 하지만 제게 상실할 것이 있던가? 여자가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녀는 면접을 볼 때도, 일을 할 때도 15층 건물의 5층 이상은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녀의 회사는 업계에서 보수가 꽤 좋은 편에 속했다. 서울살이를 하기엔 턱없이 모자랐지만, 원래 하던 경리나 마트 판매직보다야 훨씬 나았다. 여자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압박 면접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했다. 면접관은 나이, 남자친구 유무, 부모님의 이혼 사유에 이르기까지 온갖 민감한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졌다. 여자는 표정을 굳히지 않으려 노력하며 시종일관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굴었다. 인생의 하자를 친절로 메꾸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러나 그것은 바꿔 말하면 하자 있는 인생이라 친절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면접관은 여자의 말을 끊으며 퉁명스레 물었다. “그래서, 그 나이까지 뭐 했어요?” 무례는 권위의 동의어였다.
여자는 여전히 목이 말랐지만, 최소한 진정성을 꾸며낼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예정대로 출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았다. 지하 7층 모래더미 속에서 ‘부가서비스 포함 10억까지 보장되는 보험’을 광고하고 있을 제 모습을 떠올리자 절로 소름이 돋았다.


순간 아랫배에서 신호가 왔다. 뭘 마시지도 않았는데 오줌이 마려웠다. 그녀는 건물 주변을 빙빙 돌며 들어갈 곳이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어딜 가도 유리 파편투성이였다. 여자는 그제야 상층부에는 입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지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몸에서 땀이 비직비직 흘렀다. 맨발만 아니었어도, 여자가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방광염을 앓은 뒤로 오줌을 참는 것이 힘들어졌다. 텔레마케터 일을 시작하고서 얻은 병이었다. 팀장은 모니터를 통해 수십 명이나 되는 텔레마케터들의 실적과 근무 상태를 일일이 감시했다. 통화 중일 때는 ‘근무 중’ 표시가,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에는 ‘대기 중’ 표시가 떴다. 모니터에는 누가 몇 건의 실적을 올렸는지, 인센티브가 얼마인지까지도 자세히 기입되어 있었다. 그녀는 하루 평균 200명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비울 적이면 남자 팀장은 사무실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물을 처마시질 마!” 여자는 변기에 급하게 앉으면서 자신이 꼭 짐승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졸졸 흐르는 오줌 소리를 들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고객님, 잠깐만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담배 한 갑 값으로 보험을 드실 수 있답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건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발을 동동 굴리던 여자가 결국 얕은 모래밭에서 바지를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뻗어 나가는 오줌 줄기에, 사막이 탁한 빛깔로 물들었다. 한숨을 내쉬던 여자는 건물 유리에 제 모습이 비치는 것을 발견했다. 꺼림칙한 마음에 몸을 조금 비틀자 발등에 오줌이 튀었다. 울컥,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바지를 추켜올린 여자가 마른 모래에 발을 마구 비볐다.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여자는 계속 걷기로 했다. 이렇다 할 목적지도 없었다. 그녀는 다만 회사를, 오줌 냄새나는 땅을 떠나고 싶었다. 사막의 풍경은 지독히 현실 같았으나 진실인지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긴 언제라고 현실이 진실이었던가. 그저 걷다 보면 언젠간 끝나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늘 인생을 이렇듯 거꾸러뜨리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문득 오래전 들었던 동요가 떠올랐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흙먼지에 목이 막혔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은 정오가 넘어서였다. 사막 저편에 야자수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곧 청록색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느리게 껌뻑이던 여자가 이윽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정말 오아시스였다. 타원형으로 길게 뻗은 오아시스는 지구의 눈동자처럼 신비롭게 물결치고 있었다. 코를 벌름거리자 청량한 물 냄새가 났다. 여자는 생전 처음 마주한 장관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얼른 뛰어들려던 그녀가, 망설이듯 멈추어 섰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물을 떴다.


그 순간, 손바닥에 떠올린 물이 흰 점액질로 변했다.


화들짝 놀란 여자가 뒤로 물러났다. 점액질이 튀면서 주변 사막이 탁하게 물들었다. 푸른 오아시스는 빠르게 썩은 우윳빛으로 변해갔다. 물 냄새에는 비릿하고 역겨운 악취가 뒤섞였고, 야자수는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여자는 점액질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속이 뒤집혀 코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친 듯이 땅에 손을 비볐지만 모래는 점액질을 양분 삼아 더 들러붙기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가 무작정 오아시스의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가시를 세운 야자수가 진로를 방해했다. 고개를 쳐들자 야자수는 어느새 선인장으로 변해 있었다. 거대한 선인장 너머로 태양이 이글거렸다. 여자에게는 그 모양새가 꼭 남자의 성기처럼 보였다.


너는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 애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렸다.


여자는 늪처럼 자신을 끌어당기는 사막으로 돌아왔다. 누구라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필요로 했던 순간에 아무도 곁에 있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지 주머니를 더듬거린 여자가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가 의지하기로 택한 것은, 결국 119였다.


“현재 위치하고 계신 곳은 전파가 닿지 않는 구역이므로…….”


귀에 바싹 붙인 휴대폰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상태표시줄에 권외를 뜻하는 엑스 자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휴대폰 쥔 손을 늘어뜨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세금 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는데……. 여자는 애인이 쥔 숟가락을 떠올렸다. 그 숟가락이 휘휘 젓고 있던 돼지국밥을. 깍두기 국물에 검붉게 변한 고기를.


그들은 국밥집에 오기 전 모텔에 있었다. 그녀는 애인의 성기를 공들여 애무하며 자신이 아는 가장 야릇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것은 일종의 봉사이자 의무였다. ‘제대로 된’ 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그래도 연인 간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안심을 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자신의 입이나 손을 통해 애인이 절정에 이르는 것을 볼 때면 여자는 묘한 쾌감과 정복감, 피학심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봉사’가 끝나면 으레 애인의 가슴팍으로 기어들어가 아양을 떨며 물었다. “좋았어?” 꼭 이국의 포르노 배우처럼.


그녀는 불감증이었다. 대학 시절 첫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실을 알았다. 여자는 태생적으로 손발이 차고 냉이 많은 체질이었으며, 성적으로 ‘무감’했다. 아무리 장시간 애무를 받아도, 윤활제를 써도 삽입은 괴로운 난관일 뿐이었다. 여자의 섹스는 늘 애틋함보다 치열함을 동반했다. 관계 후 오줌을 눌 때면 성기가 칼에 베인 듯 홧홧했고, 자주 아랫배가 아팠다. 남자친구는 남은 대실 시간 동안 침대 모서리에 앉아 혼자 담배를 피웠다. 넌 꼭 사막 같아. 스물세 살의 여름에 그런 말을 들었던 듯도 싶었다.


날 사랑하긴 해? 여자는 혼자서 중얼거려보았다. 잠들기 전 보았던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처럼. 날 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 봐. 12화에서는 그 후 긴 키스신이 이어졌었다. 키스는 정열적이었고, 막힘이 없었다. 아마 그들의 섹스도 키스처럼 자연스러울 것이다. 초능력자와 태권도 사범은 결혼해서 아이를 셋쯤 낳고, 엔딩 신 너머로 사라지겠지. 여자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의 오랜 소망이었다.


우뚝 멈추어 선 여자가 사막을 내려다보았다. 열기를 아무리 받아도 사막은 서늘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진정성이란 말이야, 팀장의 목소리가 허공을 떠돌았다.


해가 조금 기울 무렵이었다. 온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정처 없이 걷느라 여자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눈앞은 자꾸만 흐릿해졌고 입안에는 쇠 맛이 감돌았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돌연 아이가 나타났다. 오아시스와 함께였다. 여자는 종이 인형처럼 휘청거리면서도 아이가 오아시스 물에 손을 가져가는 것을 보곤 꽥 소리를 질렀다.


“마시면 안 돼!”


가랑가랑하게 잠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갑자기 힘을 준 탓에 성대가 아팠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물을 마신 후였다. 투명한 물방울이 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토끼 눈을 뜬 아이는 여자를 쳐다보곤 야자수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열 살쯤 돼 보이는 소녀였다. 보라색 잠옷 차림에 턱까지 오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어딘지 익숙한 외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아이와 오아시스를 번갈아 보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가갔다. 종전과 달리 아주 소박한 크기의 오아시스였다. 여자가 사는 원룸보다 작았다. 여자는 오아시스에 몸을 바싹 붙인 채 얼굴을 비춰보았다. 얄팍한 호수에 비친 얼굴이 주저와 갈등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 쓰러져버릴 듯이 목이 말랐다. 그러나 아까와 같은 일을 겪고 싶지는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느새 맞은편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손으로 그릇을 만들어 오아시스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고서는 물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가득한 눈이었다. 여자는 나오지 않는 침을 삼켰다. 또 변하면 어쩌지. 손에는 여전히 모래와 정액이 엉겨 붙어 있었다. 설령 변하지 않는대도 물이 더러워질 것이었다. 아이가 목을 쭉 빼고 이쪽의 동태를 살폈다. 여자는 손을 도로 거두었다. 고개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아시스를 떠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녀는 자주 용기를 이런 식으로 허비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소녀가 그녀를 따라왔다. 얼마간 거리를 둔 채 주춤주춤 눈치를 보면서. 꼭 갈 곳 잃은 유기견 같았다. 여자는 그런 아이가 거슬렸다. 커다란 눈동자며 자신과 똑같은 맨발이 특히 그랬다. 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보육원에서 봉사를 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입 밖에 내지 않게 된 장래희망은 현모양처였고, 아이를 두 명 이상 낳고 싶었다. 안정적이고 행복한 가정의 여자로 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임신한 여자의 표정을 좋아했다. 지치고 온화한, 영혼까지 젖이 도는 얼굴을.


그녀의 어머니는 자궁이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활을 쏘기 위해 오른쪽 가슴을 도려내는 아마조네스처럼, 가능하다면 자궁을 떼어내고 싶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철퍼덕 바닥에 내팽개쳐진 아마조네스의 유방으로 태어났다.


“오지 마.” 언덕을 넘던 그녀가 기어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우뚝 멈추어 서서는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맑고 투명한, 이상하게도 그녀 너머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오지 말라고.” 여자는 개를 쫓듯 위협적으로 한쪽 발을 내리찍었다. 모랫바닥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막이 발에 휘감겼다.


“이건 사기 결혼이야.”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아버지에게 말하곤 했다. “쟤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 그때마다 아버지는 묵묵히 청소기를 돌리고, 식탁을 차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요리를 못했다. 그녀의 머리도 제대로 못 묶는 탓에 조금만 길면 미용실에 데려가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바깥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그럼 아빠는 무슨 일을 하는데?” “아빠도 바깥일을 하지.” 여자는 아버지가 빗겨준 머리를 매만지면서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어머니의 머리를 만져보고 싶었다. 머리카락 한 올 빠져나오지 않게 단단히 묶은 머리를, 강하게 물결치는 생존력을. 하루는 어머니가 출근한 뒤 침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몰래 주워 일기장에 끼워두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일기장을 펼쳐보자 머리카락은 사라지고 없었다. 바람에 날아간 건지도, 어딘가에 떨어진 건지도 몰랐다. 머리카락이야 또 주우면 그만이건만 여자는 쉬이 포기를 택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없었다. 쫓아낸 것은 자신인데 어째선지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걸음을 내딛으려던 그녀가 멈칫 다시 뒤를 돌았다. 언덕 아래 모래더미에서 보라색 천이 펄럭이고 있었다. 여자는 저도 모르게 왔던 길을 도로 내려갔다. 바람 소리 틈에 날카롭고 이질적인 숨소리가 섞여들었다. 여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뱀이었다. 그녀는 쓰러진 아이 곁에 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사막을 닮은 빛깔이었다. 여자를 발견한 뱀은 몸을 세운 채 혀를 날름거렸다. 세모꼴의 머리에, 몸통에는 점 같은 무늬가 박혀 있었다. 독사 뒤로 사막에 상처를 내듯 옆으로 기어 다닌 흔적이 가득했다. 여자는 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이 자신인지 노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인간과 동물은 팽팽한 공기 속에서 서로 대치했다. 서서히 땅거미가 지면서, 사막에 보랏빛 어둠이 스며들었다. 뱀의 형체가 가늘고 긴 그림자로 변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린 여자는 배가 아팠다. 3교시까지는 어떻게 버텼으나, 4교시가 되자 더 몸을 가누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녀는 체육 교사에게 양해를 구한 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 보건실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에게 연락이 갈 것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는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고, 어머니는 어제 막 출장을 간 참이었다.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져.” 작년에 감기로 조퇴한 여자에게 어머니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를 움켜쥔 여자가 허벅지를 벌벌 떨며 몸을 웅크렸다. 아이들이 피구를 하며 내지르는 소리까지 따갑게 온몸을 찌르는 듯했다. 개수대에서 물이라도 마시자고 결심한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득 뒤를 돌아본 순간,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그녀가 앉았던 돌계단에 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자가 엉덩이를 더듬거렸다. 축축한 피가 묻어났다.


덜컥 겁이 난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운동장 쪽을 쳐다보았다. 체육 교사가 호루라기를 불며 아이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어쩐지 아무에게도 들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주춤주춤 학교를 벗어났다. 걷는 데 자꾸만 오줌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제 바지를 볼까 봐 심장이 뛰었다.


집에 도착한 여자가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 돌아가면 아무도 모를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조심조심 신발을 벗는데 안방에서 무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자는 얼음장처럼 멈추어 섰다. 도둑일까? 주변을 살핀 그녀는 엉겁결에 거실에 놓인 트로피를 무기 대신 집어 들었다. 어머니가 회사에서 받은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트로피를 쥔 채 안방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문틈을 엿본 순간, 그녀는 아주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침대에 두 사람이 있었다. 알몸인 남녀였다. 그녀는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집에서 러닝셔츠 차림으로도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노란 머리 여자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아버지는 여자의 결 나쁜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액자 너머를 보듯 현실감이 없었다. 저게 뭐지? 여자가 우그러진 뺨으로 웃었다. 빗자루 같은 머리카락을 타고 달팽이 점액을 닮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저게 대체 뭐지? 붉게 상기된 아버지의 얼굴 뒤로 어머니의 사진이 언뜻 보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사진을 크게 인화해서 침실 벽에 걸어두는 사람이었다. 사진 속에서도 어머니의 머리는 검었고, 길었고, 윤이 났다. 그리고 완벽하게 하나로 묶여 있었다.


여자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소파 옆 탁자에 트로피를 내려놓고, 현관문을 열고, 열쇠로 도로 잠그고, 집 밖을 향했다. 태양이 뜨거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노란 머리 여자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이 떠올랐다.


여자는 모든 게 어머니 탓이라고 생각했다.


뱀은 한참을 사막에 꽂혀 있었다. 그러다 사방의 무엇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뱀의 숨소리는 멀어질수록 풀벌레 소리로 변했다. 빗자루 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이 본 것은 뱀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달빛에 의지해 아이를 끌어안았다. 손목에 선명한 두 개의 반점이 보였다.


여자는 아이를 업고 정처 없이 걸었다. 어둠 속에서는 무엇이든 검었다. 그녀도 아이도, 나아가는 길도 남겨둔 길도 모두 칠흑이었다. 그녀는 더 버틸 수 없게 되었을 때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태양이 사라진 사막은 몹시 추울 줄 알았는데, 뺨에 닿는 모래가 의외로 따뜻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웬일로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프다고, 깨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뒤 집을 나섰다. 여자는 어머니를 위해 죽을 끓이려 했다. 하지만 손에 힘이 없어 냄비를 그만 바닥에 엎고 말았다. 여자는 펄펄 끓는 죽을 팔에 뒤집어쓴 채 무의식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니를 깨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안방 문을 쳐다보면서, 닫힌 문의 눈치를 보면서 끅끅 소리 죽여 울었다. 그때 문고리가 돌아가더니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왔다. 화장을 하지 않은 초췌한 눈이 커졌다. 여자는 혼날 것이 두려워 얼른 몸을 일으키려 했다.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곧장 달려와 여자를 끌어안았다.


“괜찮니?”


여자의 어깻죽지로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화상 입은 손으로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만져도 될지 고민했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고민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머리칼이, 꼭 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허공을 맴돌던 손이 끝내 어디로 향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입술에 무언가 툭, 툭, 하고 떨어졌다. 여자는 그것을 잠자코 받아마셨다. 아주 달고 시원했다. 이렇게 깨끗한 것을 여자는 여태껏 마셔본 적이 없었다. 가만히 눈을 뜨자 아이가 보였다. 단발머리 소녀가 달빛을 받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초췌하고, 어딘지 눈치를 보는 듯한, 아주 깊은 눈으로. 여자는 문득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자가 아이를 끌어안고서 조심스레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아이와 손을 잡고 걸었다. 소녀는 그녀의 손에 무엇이 묻었든 개의치 않아 했다. 또한 그것이 무엇이든, 여자는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묵묵히 걷는데 불현듯 다큐멘터리에서 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거 아니? 사막 밑에는 지하수층이 있대.”


아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달빛을 받은 사막이 밀밭처럼 풍요롭게 흔들렸다. 여자는 현실 같지 않아도 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내 여자가 우뚝 멈추어 섰다. 저 멀리,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도시가 보였다. 그 앞에 띠처럼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도시의 야경은 부평초같이 바다를 떠돌았다. 그 안에 여자가 밝힌 긴 밤들도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힘주어 손을 잡았다. 돌아보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깜깜하게 펼쳐진 사막 저편을 응시했다. 보이지 않을 뿐, 뒤편에도 공제선이 있으리라.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얼마 없었다. 메신저함에 들어가 어머니의 메시지를 켰다. 8월 5일 화요일, 21시 36분.


‘잘 지내니?’


여자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보다, 화면을 닫았다. 때마침 전원이 꺼졌다. 고개를 들자 지하철이 소음을 내며 바다 앞을 스쳐 지나갔다. 바다에서도 같은 시간 지하철이 지나갔다. 그곳에 무수한 그녀가 손잡이를 쥔 채 서 있었다. 제 무게를 지탱하는 데 반, 앞으로 나아가는 데 나머지 반의 힘을 쓰면서. 그녀는 옷을 차례차례 벗었다. ‘비연생명 20주년’이 새겨진 붉은 티셔츠와, 무릎이 늘어난 검은 바지와, 속옷까지 모두 벗어 사막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원이 꺼진 휴대폰을 그 위에 올려두었다. 가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그냥 그 자리에서 눠버리자고 생각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 여자가, 마침내 바다로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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