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세상을 마주하다
노인의 세상을 마주하다
  • 이도형
  • 승인 2019.03.13 00:49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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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 노인 체험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

 

Prologue
고령화 사회. 전체 인구에서 고령 인구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UN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7%, 14%, 20% 이상인 사회를 각각 고령화 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에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7.2%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14.3%로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2026년에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러한 ‘노인 시대’에 발 맞춰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기자는 직접 하루 동안 노인의 삶을 체험해봤다. 한국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 관절 움직임을 제한하는 장비
▲ 관절 움직임을 제한하는 장비

 

내가 진짜 노인이 된다면
백문이 불여일견. 노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노인으로 살아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렇게 향한 곳은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이하 고령체험관)이다. 고령체험관은 국내 고령친화사업을 위해 노인 건강 증진 프로그램,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해, 생애/전시/치매 체험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노화로 인한 불편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처음으로 하게 된 체험은 생애 체험이다. 생애 체험관은 노화된 신체에 따른 불편함을 몸소 체험하는 곳이다. 해설사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본격적인 체험을 위해 특수 제작된 장비를 입었다. 손목과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무릎과 팔꿈치에는 관절 움직임을 어렵게 하는 장비를 입었다. 허리에도 예외 없이 구속 장비를 두르고 고령화로 인한 백내장과 녹내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고글을 받았다.
 
처음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는 순간 버겁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구속 장비를 모두 채우니 관절을 마음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불편한 일이었던가 새삼 깨달았다. 관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니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지고 몸을 짓누르는 장비 무게에 어깨가 계속 움츠러들었다. 총 10kg에 이르는 장비들의 무게는 노화로 인해 몸이 무거워지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존재하겠지만 해설사에 따르면 90세의 노인이 된다면 보통 이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니, ‘과연 오래 사는 것이 좋기만 한 일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생애 체험 중 슬로프(경사) 체험
▲ 생애 체험 중 슬로프(경사) 체험

 

노인이 되니 느껴지는 불편함
본격적으로 생애 체험을 시작했다. 체험은 노면 및 슬로프(경사), 평생, 주거 공간, 감성 체험 순으로 이뤄졌다. 먼저 노면 및 슬로프 체험을 통해 휠체어를 타봤다. 남을 끌어줄 때와 내가 직접 휠체어를 끌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우선 휠을 돌리는 것 자체가 익숙치 못해 어려웠고 특히 턱이나 경사라도 있는 곳은 마치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힘겹게 나아갔다. 휠체어를 위한 전용 통로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 보행 보조기구 체험 중인 기자
▲ 보행 보조기구 체험 중인 기자

 

다음으로 평생 체험과 주거공간을 체험했다. 전시 체험관을 통해 본격적인 고령친화제품을 알아보기 전 간단하게 노인들의 삶을 도와주는 기구들을 체험해봤다. 균형 감각을 키우는 기구 위에 올라 서보고, 게임기를 통해 간단한 방향 감각 확인과 산수 능력 시험을 봤다. 쉬운 난이도였지만, 노인이 돼도 지금과 같을 거라는 자신은 없었다. 현재는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못하는 삶이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했다.
 
감성 체험에서는 노화로 인해 저하된 시각, 청각, 촉각을 체험했다. 앞서 받은 고글 중 백내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고글을 쓰니 김이 서린 차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모두 뿌옇게 보였다. 다음으로 녹내장 고글을 쓰니 시야가 제한됐다. 눈앞에 세상을 누가 임의로 좁혀 놓은 것 같았다. 마땅한 해결법 없이 계속해서 시야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은 얼마나 두려우셨을까. 청각 역시 누군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것처럼 깨끗하게 들리지 않았다. 특히 촉각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만지니 모든 물건이 비슷하게 느껴져 구분이 어려웠다. 노인에게 무언가를 눈으로 찾고 피부로 느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노인이 살기 좋은 세상, 어디쯤 왔을까
고령친화제품에 대해 들어봤는가. 고령친화제품이란 고령자를 대상으로 건강관리, 수발, 일상생활, 여가·문화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고령자의 정신적, 신체적 특성을 배려한 제품이다. 전시체험관에서는 일상생활용품, 배설용품, 기거용품, 욕창방지용품, 이동용품, 테크노하우스 등 10가지 기능별, 공간별 고령친화제품영역을 돌아보며 직접 체험할 수 있다.
▲ 노인 목욕을 도와주는 의자
▲ 노인 목욕을 도와주는 의자

 

대부분의 제품 첫인상은 ‘특이하다’였다. 어떤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수저를 들 힘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 팔목을 감싸도록 디자인된 수저, 목을 다 쓰지 않아도 컵 안에 있는 물을 다 마실 수 있는 컵, 문이 열리는 욕조 등. 우리가 평소 느끼지 않기에 모르는 생활 속 불편함을 도와주는 제품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아직 보편화되지 않는 탓인지 가격표에 까맣게 적힌 숫자들을 세다가 놀라곤 했다. 함께 간 동료 기자들과 “우리 돈 많이 벌어야 겠다”며 “돈이 없으면 노인 됐을 때 이런 도움 받지도 못하겠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인 복지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현재 우리나라는 주택연금 가입 연령 60세, 임플란트·틀니지원 65세, 국민연금 받는 나이 62세로, 노인 복지 연령도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인 실태다. 또한 지역 간 필수 의료 서비스 격차도 심하다.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에서, 그리고 대도시에 비해 중소도시·농어촌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도시에 살지 않는 노인은 치료 가능 사망(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원인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음을 시사한다. 
 
 
노인도 해야 합니다
지난달 대법원은 30년간 이어져 오던 판례를 깨고, 육체 노동자의 정년 연령을 만 60세에서 65세로 상향시키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현 정부에서는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시킬 것을 검토 중이다. 노인 연령 상향은 곧 정년을 연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노인 연령 기준 상향은 노인에게 분명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노인 연령 상향 논의가 끝없이 이뤄지는 상황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평균 은퇴 연령이 52.6세이다. 2018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일자리 사업 희망 노인은 119만5천명인 반면, 노인 일자리 수는 51만명으로 일을 원하는 노인들 중 43%만이 일할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베이비 붐세대의 은퇴로 인해 노인들의 구직은 더욱 어려워진 실정이다.
 
어렵게 구직에 성공하더라도 노인 대부분이 경비나 택배 등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태반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해 경륜과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재 고령체험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등의 정부, 지자체 기관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노인들의 취업역량을 강화해 산업인력으로서 경쟁력을 키우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 밖에도 재택근무 활성화, 탄력 근무제 확대 등을 통해 노인이 일하기 편한 여건, 기업이 노인을 고용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노인들이 스스로 본인의 삶을 부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노인과 청년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Epilogue
직접 노인의 삶을 체험해보고 취재를 하면서 한국에서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서바이벌’이라고 느껴졌다.
건강 악화는 기본. 노인 빈곤률이 OECD 국가 중 1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로부터 노인 일자리 증가 논의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 따라잡지 못하는 정보 격차로 인해 디지털 소외는 당연해졌지만, 젊었을 때의 삶처럼 사는 것은 당연해지지 못했다.
점점 늘어가는 노인의 수가 무색하게도, 그 많은 노인은 점점 코너에 몰리고 있다. 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우리도 언젠가 노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보내는 것이 어떨까. 어떤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서바이벌이 돼선 안 되니까 말이다.
이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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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oshape@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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