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뮤지엄 W
피규어 뮤지엄 W
  • 김민제
  • 승인 2019.03.13 00:51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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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실현하는 작은 즐거움
▲ 다양한 영화 속 캐릭터의 피규어들이 전시돼 있다
▲ 다양한 영화 속 캐릭터의 피규어들이 전시돼 있다

피규어는 ‘환상’을 지배하고자 했던 열망의 산물이자 무형을 소유하려는 욕구의 결정이다. 자신들이 꿈꿔왔던 ‘이상형’이라는 환상을 비너스상과 다비드상을 통해 실현한 인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현실로 실현해내는 일에 능숙해졌다. 게다가 미디어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영화와 애니메이션과 같은 ‘즐거운 환상’을 접하기 수월해졌고, 또 그것에 쉽게 매료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액션을 펼치며 세상을 구하는 캐릭터들을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덕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그 ‘덕후’들의 작은 소망이 다시 한 번 꿈틀거린 순간,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피규어’가 빛을 보게 된다.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피규어 뮤지엄W’는 오로지 피규어만을 위한 공간으로, 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피규어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매표소가 보인다. 표 값으로 1만5천원이라는 금액을 지불하고 나자 사기를 당한 건 아닌지 조금은 불안해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다시 계단을 통해 5층부터 관람하며 내려오면 된다는 직원의 안내를 듣고 마음을 추스른다.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빌슈트 '사자비'

걱정은 잠시, 4층에 올라서니 사방이 피규어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징가Z’와 ‘건담’, ‘에반게리온’ 등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애니메이션 피규어가 모여 있다. 특히나 한쪽 진열장을 가득 채운 가지각색의 건담 프라모델은 조립부터 도색, 마감까지 손수 작업해야 하는 까다로운 제작 과정에도 하나의 흠집도 없이 기체를 완벽히 재현해낸 제작자의 실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4층에 한 눈 팔려 잊고 있던 5층에 올라갔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5층은 3층과 함께 각종 코믹스나 영화와 관련된 피규어를 전시해놓은 곳이었다. <스타워즈>부터 <터미네이터>, 마블과 DC 코믹스의 히어로 캐릭터까지, 그 영화만큼이나 피규어들의 스케일도 남달랐다.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한 솔로’의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의 피규어는 크기도 크기지만 기체 외벽의 설비, 그을린 부분의 묘사, 조종간이나 포탑까지 모든 부분의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물과 1:1 비율로 제작된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등의 스태츄는 그들을 직접 만나러 할리우드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 1:1 비율로 제작된 `아이언맨' 스태츄
▲ 1:1 비율로 제작된 `아이언맨' 스태츄

2층까지 내려가자 반가운 얼굴들이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바로 ‘원피스’와 ‘드래곤볼’의 캐릭터들이다. 피규어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을 되살려준다는 것. 당당하게 서있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모습을 보자 그들이 처음 항해를 나설 때의 그 두근거림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반대편 진열장에 장식돼있는 ‘드래곤볼’의 피규어를 보고 서울에 초사이언이 이렇게나 많다면 앞으로도 지구의 미래는 걱정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래로 내려간다.


처음엔 30분이면 다 둘러보고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미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시곗바늘을 보고서야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오래 볼수록 사랑스러운 피규어들은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게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는 기분 전환에 충분했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1시에서 오후 7시까지. 현실에 치이다 지쳐버린 심신을 위로받고 싶다면, 우리의 ‘환상’을 실현해주는 피규어를 만나보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어쩌면 그 작은 환상이 일상이라는 현실마저 즐겁게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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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ange88@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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