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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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우현(환경자연경제·2)
  • 승인 2019.03.13 18:59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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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어나면서 한숨 쉬듯 나온 한마디다. 아직 겨울이니 캄캄하고 수능을 보려고 일어났을 때의 느낌이다. 눈 뜨자마자 졸음이 가시고 정신이 말짱해지는 기분. 매일 이러면 나는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뒤로 한 채 화장실로 간다. 어색하지만 많이 봐왔던 머리를 한 내가 거울에 비친다. 고등학생 때 두발 규제가 상당했기에 아예 바리깡을 사서 어머니가 머리를 밀어주셨었다. 얼굴을 물로 적시고는 멋있는 영화 속 남자주인공처럼 고개를 살짝 들어서 거울의 나를 째려본다. 생각보다 앳된 소년의 얼굴이다. 이목구비가 밋밋해서 그런가. 온갖 잡생각이 떠도는 순간 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식탁에 앉아 차려진 음식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뭇국이다. 어머니가 미역국과 소고기뭇국을 끓여주시는 날에는 항상 배가 터지도록 두 그릇씩 쓱 비운다. 국은 한번 먹고 나서 다시 끓여서 두 번째로 먹는 맛이 최고인데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이 어느새 비워버린 내 밥그릇에 가득하게 차 있는 걸 보며 일어난다. 양치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옷을 입었다. 모자는 굳이 뭐가 필요할까 싶어서 쓰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방을 한번 보는데 거슬리는 것은 없다. 부모님과 차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정안휴게소였다. 김밥과 우동이 내 앞에 놓이고 젓가락을 들어 한입. ‘아 정말로 원효대사의 말씀은 옳았구나’ 생각하며 다시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내 경우에는 반대였지만 마음이 새까마니 바깥 음식이 내 입안에서는 한없이 텁텁했다. 물을 한잔 비우고 나와 흡연 부스로 들어가서 한대를 태우고 있자니 한없이 처량한 저 청년 나에게 담배를 빌린다. 같은 처지여서 그랬을까 어차피 세 시간 후 버리려던 거라서 그랬을까 흔쾌히 불까지 붙여주고 떨어지는 담뱃재처럼 영양가 없는 몇 마디를 건네다가 헤어진다. 차를 타고 도착하니 어느새 주차장에는 차가 참 많았다. 조교들이 바쁘게 주차장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저 형광 조끼를 입고 저 자리에 내가 있게 될지. 카페에 앉아 스무디를 시켰다.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 중간에 친척, 친구 그리고 여자친구의 통화가 곁들여졌다. 참 고맙고 이쁘다. 그러는 사이 방송이 들린다. 모여라! 그렇게 절망적일 수 있었을까. 연병장 스탠드로 가니 ‘이제 장병들은 연병장 가운데로 서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최후통첩이 들린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와 악수, 포옹 한번. 뒤로 돌아서 어머니와 포옹 하려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눈물이 보였다. 한번 안아드리고 나도 터지기 전에 돌아서서 스탠드 계단을 내려선다. 대열에 맞춰 연병장에 딱 선 순간의 내 속마음은 평생 못 잊을 듯하다.

‘아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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