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으로의 초대
성(性)으로의 초대
  • 안서진
  • 승인 2019.03.23 00:52
  • 호수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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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이색 체험관 성인용품점

“문화의 흐름은 거대한 파도와 같다.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국내 최대 온라인 성인용품점 바나나몰의 정윤하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보수성이 강하던 대한민국의 성 문화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맞았다.

기자가 처음 성인용품이라는 단어를 접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인용품은 후미지고 음침한 곳에서만 보이는 어쩌면 다가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유교문화 때문에 성을 금기시했던 사회 분위기 탓이다. 그러나 10여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젊은 세대들에 의해 성인용품점들은 번화가 대로변으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현재는 이색데이트 코스로도 소개되는 성인용품점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서울시 강동구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성인용품점 ‘H2O’를 방문했다. ‘물처럼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는 성인용품점 H2O의 빨간색 간판을 본 순간, 처음 당당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대체 무슨 문화 체험을 하겠다고 했던 걸까’하는 자책 섞인 한숨과 함께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궁금증 반 불안감 반의 마음을 안고 들어선 성인용품점. 금단의 구역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떨림과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본다. 들어서자마자 새하얀 진열장 위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얼핏 보면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액세서리 가게 정도로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1층은 향수, 젤, 피임 도구 등을 파는 곳으로 성인용품점 입문자인 기자에게도 비교적 무난한 코너였다. 특히 SNS에서만 접하던 러브젠가, 여성의 몸에 좋다고 알려진 생리컵 등 반가운 제품들도 보였다. 제품 사이사이 붙어있는 커플들의 대화 재구성과 같은 재치 있는 설명서들은 제품에 대한 흥미를 돋웠다. 글귀를 따라 올라간 2층은 여성용품, 커플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 흡입형 바이브레이터의 모습
▲ 흡입형 바이브레이터의 모습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하는 마음의 준비와 함께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라가는 계단 옆 벽면은 코스튬 의상들이 전시돼 있었다. 섹시한 의상부터 귀여워 보이는 의상까지 훑어보니 어느새 2층에 다다랐다. 2층을 둘러보던 중, 기자의 눈에 들어온 건 핑크 색깔 망치모양의 제품이었다. 아래 적힌 이름표를 보니 흡입형 바이브레이터라고 적혀있다. ‘이게 어떻게 쓰는 물건일까’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쯤 직원이 다가와 설명을 해주겠다고 요청했다. 손사래까지 치며 괜찮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직원의 설명이 기자의 귀를 관통해버린다. 듣다 보니 솔깃해지는 것도 같다. 제일 잘 나가는 베스트 상품이라며 제품을 추천해주는 직원의 열정에 어느새 민망함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경청하고 있는 기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지만 아래 적힌 가격표를 보고 조심히 다시 내려놓았다.

▲ 포스트잇으로 가득 차 있는 2층 벽면
▲ 포스트잇으로 가득 차 있는 2층 벽면

 

2층에서 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중앙에 위치한 포스트잇들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저마다 성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남긴 곳으로, 빈틈이 안 보일 정도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간혹 기괴한 메모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이곳을 방문함으로써 성에 대해 솔직해지고 싶다는 바람들이었다. 기자도 슬쩍 ‘당당해지자’는 메모를 남긴 채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성인용품점을 나오는 길, 쫓기듯이 들어갔던 처음과 달리 한층 여유로워진 발걸음으로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괴상한 제품만을 판매하는 곳,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당함이 트렌드로 더욱 확고히 자리 잡아 더 이상 성인용품점을 방문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인식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한번쯤은 동성친구 혹은 연인의 손을 꼭 붙잡고 방문해보길 바란다. 혼자 갔을 때보다 더욱더 재밌는 품평회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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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j960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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