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에게 친절하기
자기에게 친절하기
  • 유헌식(철학) 교수
  • 승인 2019.04.03 00:27
  • 호수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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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식(철학) 교수
            유헌식(철학) 교수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보살펴야 잘 자란다. 동식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가꾸어야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다. 외모와 마찬가지로 내면도 관심을 기울여 지속해서 가꾸어야 잘 자랄 수 있다. 자기를 가꾸는 데에서 ‘자기에게 친절하기’를 권한다.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불친절하면 잘 자라지 못한다. 동식물과 달리 사람은 자기를 돌이켜 살피는 반성(反省) 혹은 반조(返照) 능력 때문에 스스로에게 관심을 갖고 친절할 수 있다.


‘자기에게 친절하기(self­friend liness)’는 영어 표기에도 드러나듯이 자기에게 ‘친구’가 되는 태도이다. 내가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정을 관리하듯 나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보는 것이다. ‘괜찮은 나’를 만들기 위해 친구를 대하듯 나에게 따뜻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타인의 위로와 도움에 기대기보다는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이 급선무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는 나이기 때문이다.

남이 보는 내가 아니라 ‘내가 보는 나’가 괜찮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를 아끼고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친한 친구처럼 아낀다면 나에게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뒤 깊은 고뇌에 빠진 라스콜리니코프를 향해 그를 사랑하는 여인 소냐는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은 대체 당신에게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요?” 소냐는 그가 타인을 살해한 사실보다 ‘살인’을 스스로에게 용인한 그의 태도에 분개한다. ‘살인자’는 자기를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꼬리표이다.

그런데 ‘자기친절’은 ‘자기사랑(self­love)’과 같지 않다. 물론 자기사랑이 자기친절의 조건이긴 하다. 자기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지 않고 자기에게 친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사랑은 자칫하면 자기애착의 나르시시즘에 치우칠 위험이 있다. 자기사랑은 자기중심주의에 근거하여 자기집착과 자기이상화(理想化)의 함정에 빠져 자기가 처한 현재와 현실을 망각하고 왜곡할 수 있다. 요즘 버닝썬을 둘러싼 승리와 정준영의 행태는 왜곡된 자기사랑의 한 단면이다.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의 행복으로 삼는 자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기친절은 자기의 실상(實像)을 직시하여 자신의 약점까지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무조건 자기를 보듬고 편드는 태도는 자기친절에 위배된다.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은 자기를 외면하기도 하고 자기에게서 거리를 둘 수도 있어야 한다. 귀에 듣기 좋은 얘기만 하는 사람을 참된 친구라고 할 수 없듯이 나에게 유리하게만 나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나는 나에게 좋은 친구일 수 없다. 자기친절은 폐쇄적인 자기사랑과 달리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기개방의 태도를 요구한다. 자기성장은 개방적인 자기친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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