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드라마 속의 X세대
‘응답하라’ 드라마 속의 X세대
  • 박재항 마케팅 컨설턴트
  • 승인 2019.04.03 00:27
  • 호수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④ X, ‘알 수 없는’ 그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기억하는가. 2012년 <응답하라 1997>로 시작하여, 2013년은 1994, 2015년 말과 2016년 초에 걸쳐서는 1988년으로 시대 배경은 연대를 거슬러갔다. 꼭 그렇게 맞춘 건 아니었겠지만, 여주인공의 드라마 상 출생연도도 갈수록 더 과거로 갔다. ‘응칠’의 성시원(정은지 분)은 H.O.T. 멤버 토니안의 광팬 여고생인 1980년생이다. 농구대잔치에서 응원하던 팀이라는 이유로 1994년 그 대학으로 들어간 신입생인 ‘응사’의 성나정(고아라 분)은 1975년생으로 나온다. ‘응팔’이 방영될 당시 나이 마흔 다섯인 성덕선(젊은 시절은 혜리, 중년의 현재는 이미연 분)을 소개하는 방송국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다는 1971년생. 마흔 다섯의 성덕선.
덕선이 열여덟이던 1988년, 건국 이래 최고의 행사인 ‘서울올림픽’이 열렸고
학력고사를 치르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대학에 입학하던 1990년,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시작됐다.

 

이들 여주인공 셋이 X세대의 특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출산율과 신생아 수라는 용어의 원뜻에 맞춰서 보면 성덕선의 세대는 베이비부머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X세대부터 단순한 출생연도와 생활수준 등에 따른 기준에 더하여,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측면이 세대의 구분과 정의에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의식주의 기본 요구가 해결되면서 다수가 어느 정도 문화 여가를 즐기기 시작한 세대이다. 출생연도로 보면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태어난 이들을 X세대라고 본다.


‘응팔’의 성덕선에 대한 소개에서 이들 한국의 X세대를 빚은 사건들이 나온다. 한국전쟁 이래 가장 많은 외국인이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게 서울올림픽이었다. 외국인과 외국 문화에 대한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바로 해외여행 자유화조치가 나왔고, 대학생들의 배낭여행 러시가 시작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국제 냉전 체제가 해체되면서 사회 전체를 옥죄었던 사슬들이 풀렸고, 각 분야에서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문화예술 쪽. 특히 서태지로 대표되는 대중음악이 특히 용솟음쳤다. 이어 ‘응칠’의 성시원이 좋아한 H.O.T.를 비롯한 현재의 아이돌그룹 원형을 만드는 한국적 연예매니지먼트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정통 해외 팝음악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자리를 작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X 세대를 겨냥한 남성 화장품 광고
▲ X 세대를 겨냥한 남성 화장품 광고

1993년 12월에 나온 남성 화장품 광고가 ‘X세대’라는 용어 자체를 한국인들에게 깊게 각인시켰다. ‘“나, X세대?” 나를 알 수 있는 건 오직 나’라는 카피에 ‘나’가 세 번이나 나온다. X세대와 개인주의가 결합되어버렸다. ‘80년대 호황기를 거치면서 다져진 경제력에, 글로벌을 향해 막아섰던 장벽들이 걷히며 다양한 문화적 에너지가 조성한 들뜬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그들을 X세대라고 부른 것이다.


미국 X세대의 ‘X’가 ‘미지’와 ‘부정’을 뜻한다면, 한국은 ‘exciting’과 들뜬 상태에 이루어지는 소비, 곧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인 ‘exchange’의 ‘X’라 할 수 있다. 그런 한국의 X세대가 미지와 부정의 ‘X’에 부딪히게 된 건 바로 1997년 IMF 경제위기를 당하면서였다. 이제 위로는 50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40줄에 접어드는 한국의 X세대의 정체성은 지금도 그들 자신에게나 학계에서나 마케팅 업계에서나 불명확하다.

 


박재항 마케팅 컨설턴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