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 송정림 작가
  • 승인 2019.05.17 00:32
  • 호수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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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한 이 희곡에는, 끊임없이 기다리는 두 사람이 나온다. 두 주인공이 기다리는 것은 고도라는 사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 연극이 공연된 후, 신문과 방송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물었다.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자 베케트는 대답했다.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장을 열면 나무가 있는 시골집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기다려야만 한다’는 사실 뿐이다. 그들은 기다리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모르는 화제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왔다 갔다 서성거리고 구두끈을 풀었다 당겼다 한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그들에게 포조가 럭키의 목에 포승줄을 감고 그 줄을 잡고 다가온다. 포악한 주인과 하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혹시 고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럭키는 맞고 발길로 차이면서도 포조의 시중을 든다. 하물며 고기를 먹다 남은 뼈다귀를 럭키에게 던져주기도 한다. 포조와 럭키는 학대하고 학대받다가 퇴장한다. 남겨진 두 사람은 또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때 소년 하나가 등장해서 말한다. “고도 씨는 오늘 저녁에는 못 오시지만 내일은 틀림없이 오시겠다고 선생님들께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일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들 앞에 또 포조와 럭키가 나타난다. 눈이 먼 포조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한 번 학대하고 학대받는 장면을 연출하다가 퇴장할 뿐. 또 소년이 등장한다. 그런데 소년도 두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내일은 틀림없이 오실 것”이라는 말만 전할 뿐이다.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며 이곳을 떠나자고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그저 막연히 기다린다.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

우리가 사는 일이 그런 것 아닐까? 사는 것 자체가 기다림 아닐까? 작게는 시켜놓은 음식을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내 꿈을 이루기를 기다리는 것까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일생에 다시 한 번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까지. 하루 중에서 좋아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좋아하는 계절을 기다리는 일까지.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흰 눈을 기다리는 일까지. 월급날을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집 장만을 기다리는 일까지.


낚시꾼은 고기를 기다리고 산사람은 정상에 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도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무작정 기다리고, 기다리는 존재가 없으면 기다림을 만들어 기다린다. 꼭 만나지 않아도 좋다. 그냥 기다린다. 그래서 시인도 노래했나 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기다림 중독자들, 기다림에 묶여있는 종신유형수들. 바로 우리들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허망이라고 해도, 내가 기다리는 것이 내일은 꼭 올 거라며 자꾸 속인다고 해도, 그래도 기다림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기다림의 슬픈 호수 하나 가슴에 묻어둬야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삶이다. 인간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생물들이 다 기다린다. 달맞이꽃은 달을 기다리고 해바라기는 해를 기다리고 개구리는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목마른 나무는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인생이다. 기다림은 우주의 운행이다.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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