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울 밤을 즐기다
마음을 채울 밤을 즐기다
  • 이다현
  • 승인 2019.06.05 16:25
  • 호수 1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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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심야 문화

기자는 낮보다 밤을 좋아한다. 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그것대로 즐겁고,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밤을 정신없이 과제를 하거나 기사를 쓰느라 보냈고, 할 일이 없는 날에는 그동안의 피곤함에 잠겨 잠들기 바빴다.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전 어느 날, 지나가는 밤을 놓치기 아쉬워 달빛과 함께할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훌쩍 다가온 여름에 오후 6시 20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하늘은 여전히 파랗기만 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심야 영화를 볼까 생각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시간이기에 식상한 것은 피하고 싶었다. 휴대전화로 ‘밤을 즐기기 좋은 곳’, ‘심야 문화’ 등을 검색해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경복궁 야간 특별관람을 보고는 망설임 없이 경복궁으로 향했다.

▲ 해지기 전과 후의 고궁의 전경
▲ 해지기 전과 후의 고궁의 전경

경복궁에 도착해 표를 끊을 때까지도 해는 떨어지지 않았다. 깊은 어둠에 등불이 반짝이는 웅장한 궁궐을 기대했지만 낮과 다르지 않은 모습의 궁으로 들어갔다. 근정전, 강녕전 등 저마다의 아름다운 선을 가진 공간을 볼 때마다 어둠 속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오히려 더 설렜다.

서서히 어둑해지는 하늘이 반가웠다. 해가 진 후의 경복궁을 보고 나면 경복궁의 낮과 밤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낮과 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경회루였기 때문이다. 고요한 물길 위의 경회루는 감탄을 자아냈다. 왜 경회루가 연회장소였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누각은 소박함과 화려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조명을 보며 밤이 왔음을 느꼈다. 불이 켜진 경회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넋을 놓고 빛나는 경회루를 보고 있자니 시끄러운 말소리와 정신없는 카메라 빛 사이에서도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건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기분 좋은 고요함이었다.

▲ 수정전에서 열린 전통무용 ‘여명의 빛' 공연
▲ 수정전에서 열린 전통무용 ‘여명의 빛' 공연

행복한 기분에 빠져있던 기자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판소리 ‘심청가’였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찾아가 보니 수정전에서 고궁음악회가 한창이었다. 꽉 찬 사람들 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서있었지만 저린 다리를 눈치채지도 못한 채 이어지는 공연을 즐겼다. 왔던 길을 돌아나가며 아까와는 다른 경복궁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막상 경복궁을 벗어나 광화문을 보고 있자니 조금 더 걸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밤을 경복궁으로만 채우기엔 아쉽다는 마음이 더 컸다. 기자는 남은 밤을 가득 채울 곳으로 경복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연의 메카’ 대학로를 선택했다. 요즘은 심야 영화에 이어 심야 연극도 많아 표를 사는 사람과 연극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건물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연극 중 어떤 것을 봐야 할지 고민하던 기자는 밤에 어울리는 긴장감을 선사할 코믹 추리 스릴러 ‘행오버’를 선택했다. 숙취라는 뜻의 행오버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벽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며 끝없는 상상을 하고 나니 어느새 입장 시간이 다가왔다.

▲ 연극 ‘행오버’ 티켓
▲ 연극 ‘행오버’ 티켓

한눈에 들어오는 좁은 무대에 불이 꺼지고 연극이 시작됐다. 시작부터 끝까지 웃다가 놀랐다가 무서웠다가를 반복하며 무대에 빠져들었다. 작은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는 무대를 꽉 채워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연극은 진행되는 95분 내내 현재와 과거를 세밀하게 오가고 상상 이상의 반전으로 끝을 맺었다. 기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마지막 순간의 여운이 남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탄을 표하며 연극의 묘미인 배우들과 사진 촬영까지 한 후 건물을 벗어났다.

깊은 밤인데도 아직 건물들은 빛나고 사람들은 넘쳐났다. 간신히 마지막 버스를 타고는 창밖을 보며 잊지 못할 오늘 밤을 정리했다. 조용히 혼자 보내는 시간만이 여유로움이 아닌데 해가 언제 지는지도 모르게 보냈던 지난밤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면 하루를 꽉 채워줄 밤을 즐겨보자. 낮에만 보던 것, 느끼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감정을 선사할 테니.

이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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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codm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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