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반복
습관과 반복
  • 유헌식(철학) 교수
  • 승인 2019.06.06 16:58
  • 호수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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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식(철학) 교수
                      유헌식(철학) 교수

 

삶에서 습관만큼 무서운 건 없다. 습관은 일상의 삶을 지탱하여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좋은 습관’을 삶의 핵심 덕목이라고 말한다. 습관이란 주어진 사태를 대하는 일정한 사고 혹은 행위의 경향성이다. 습관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중에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철학적 인간학에서 볼 때 동물은 습관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인간은 교육을 통해 나쁜 습관을 반성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좋은 습관은 계속 유지해야겠지만 나쁜 습관은 고치는 게 좋다. 습관이 반복적인 행위의 산물이라고 할 때 좋은 습관을 갖는 데에도 반복 행동이 요구된다.


그런데 좋은 습관보다 나쁜 습관을 고치기가 훨씬 힘들다. 좋은 습관은 교육이라는 문화적 요소에 의해 형성되는 데 반해, 나쁜 습관은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것은 항상 문화적인 것에 비해 그 위력이 강력하다. 우리는 습관 때문에 매사를 순간순간 의식하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또한 습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크게 방해받기도 한다. 습관은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어서 우리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려는 관성을 지닌다. 이러한 관성 때문에 습관을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로 바꾸지는 못한다. 관성적인 힘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습관을 거스르는 데 따른 고통과 긴장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습관을 바꾸는 일은 정신보다는 신체의 소관이다. 습관은 몸의 기억에 따른다.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행할 수 있는 이유는 습관이 신체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습관적인 행동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반성이라는 정신의 계기가 선행하지만 실질적인 궤도수정은 정신이 아니라 신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결국 신체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 관건이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의 ‘육화된 코기토(the embodied cogito)’에 따르면 ‘나의 생각’에는 항상 신체가 수반한다. 몸과 마음은 붙어있다. 그래서 마음만으로 습관을 바꾸기는 어렵다. 습관 만들기의 종착점은 결국 신체에 귀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좋은 습관의 습득을 순전히 나의 의지와 노력에 맡기는 처사는 온당치 못하다.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습관을 이미 습득하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 속에 내 몸을 던지는 일이 효과적이다. 처음에는 낯선 상황에서 오는 긴장을 견디기 힘들겠지만 단순히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그 상황에 나를 밀어 넣다 보면 차츰 익숙해진다. 인간의 적응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지속적인 접촉은 예상보다 빨리 내가 그들의 습관에 편승하게 만든다. 병원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성향도 전염성이 강하여 그들의 좋은 습관에 나도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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