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 송정림 작가
  • 승인 2019.09.0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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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장면
▲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장면

 

테레사가 사는 마을에 우연히병이 나돈다. 토마스의 병원 과장이 우연히아프게 되고 토마스가 우연히대신 가게 된다. 그 마을에서 우연히시간이 남고 우연히테레사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테레사가 우연히토마스 테이블 담당이었다. 그렇게 우연이 연속적으로 여섯 번 일어나면서 프라하의 외과 의사인 토마스는 시골의 레스토랑 여급인 테레사를 만난다. ‘우연의 폭격’, 그것이 이들의 사랑의 시작이었다. 누구나의 사랑처럼.

테라스가 토마스의 아파트 문턱을 넘어섰을 때 테라스의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난다. 플랫폼에서 샌드위치를 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보고 싶었던 그를 만났을 때 꾸르륵 소리부터 들켜버린 그녀. 울어버리고 싶었는데 토마스가 그녀를 안는다. 시간이 정지한다.

그 후 토마스와 테라스는 프라하에서 같이 살 게 된다. 그러나 토마스는 자유 연애 주의자. 축제처럼 첫 부인과 이혼하고 그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어떤 여인 곁에서 계속 살도록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토마스는 그것을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여자와 잔다는 것과 여자와 잠든다는 것은, 서로 다른 열정일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열정이라고.

그러나 토마스가 사비나와 스위스에서도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테레사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쪽지를 남기고 프라하로 돌아가 버린다. 테레사에게서 구속을 느끼던 토마스는 한동안은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즐긴다. 그에게 테레사와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힘겨웠다. 계속 무엇인가를 비밀로 해야 했고 은폐해야 했고 거짓말하고 보상해야만 했다. 그는 그녀를 기분 좋게 해주어야 했고 그녀를 진정시키고 그녀에게 계속 자기의 사랑을 증명해야 했다. 이제 그 모든 부담이 사라지자 홀가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점점 테레사를 생각한다. 이별 편지를 쓸 때 그녀는 얼마나 슬펐을까, 그녀가 떠날 때는 어땠을까, 한 손으로는 큰 트렁크를 끌고 다른 손으로 카레닌(그들이 키우는 개)을 맨 끈을 잡고 갔겠지. 토마스는 괴로움에 잠긴다.

러시아군 탱크의 수백 톤짜리 쇳덩이들을 모두 합쳐도 동정심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토마스는 무거움의 가치, 그 메시지를 쫓아서 프라하로 간다. 결국 그는 의사직을 박탈당하고 테라스와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게 된다.

토마스. 당신의 삶에서 모든 불행은 나에게서 와요. 당신은 의사가 천직이었는데 나 때문에 당신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어요.” 테레사의 말에 오히려 천직이 없으니 가볍고 자유롭다던 토마스는 테레사와 함께 교통사고로 죽어간다.

사명 따위를 갖지 않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말하는 토마스. 그녀로 인해 무거운 선택을 해야만 했던 토마스를 위해 눈물 흘리는 테레사.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끊임없이 배신의 길을 걷는 사비나. 전형적인 지식인인 프란츠. 그 어떤 인간보다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진 개 카레닌.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곧 나의 모습이고 내 친구, 내 연인,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결국 사랑 때문에 프라하로 돌아오는 무거운 선택을 했던 토마스. 행복한 슬픔의 그 무거운 공간 속에서 가볍게 죽어갔던 그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그러니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무거운 것? 아니면 가벼운 것?”

우리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으로 영혼의 가벼운 항아리를 무겁게 채우고 싶어 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새털처럼 자유로운 가벼움을 추구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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