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근무환경인가, 불안한 근무환경인가
행복한 근무환경인가, 불안한 근무환경인가
  • 노효정 기자
  • 승인 2019.09.05 14:59
  • 호수 14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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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View 1] 중소기업 평사원 A

나는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잡무들을 맡곤 했다. 커피 타오기, 복사, 서류 전달 등. ‘사무직이라는 직무와 상관없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내 일에 대한 보람조차 얻을 수 없게 했다. 불만이 생겨도 명령에 대한 불복으로 간주할까 봐 반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관행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기면서 내게 맡겨지는 잡무들은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아직 형사적 처벌 방법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변화는 분명히 존재했다. 내게 아무렇지 않게 잡무를 던져주던 이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며, 확실히 잡무를 맡기는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상사에게 업무를 전달받으면서 듣던 불필요한 폭언들도 줄었고, 덕분에 나의 스트레스가 감소해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이와 같은 변화가 계속 생긴다면 근무환경이 점차 발전할 것이다. 관련 법안이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법안은 꼭 필요하다.

 

[View 2] 대기업 과장 B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개정된 이후부터 회식 한 번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평사원들에게 업무 요구나 그들이 해온 성과에 대한 평가마저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 없어졌다. ‘정당한 이유 없이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괴롭힘이라는 법에 있어 명확한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 도대체 정당한 이유는 무엇이고, 부당한 대우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원들의 기분에 따라 기준의 범위가 바뀔 수 있을 만큼 애매모호한 말이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업무지시, 사원에 대한 평가 등이 이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괴롭힘이라는 모호한 틀 안에서는 업무상 필요한 지시나 언행에도 사원들이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괴롭힘이 돼버린다. 이렇게 해선 회사의 업무가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성과를 내지 못해 불만을 품은 사람이 악의적으로 신고하더라도 우리는 대응할 방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 내 우리 팀에서 이뤄지는 성과에 대한 책임은 상당 부분 관리직에 있는 상급자인 나에게 주어진다. 이 법안으로 인해 업무가 부진한 사원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함부로 할 수 없고 혹여 싫은 소리를 해 신고를 당하기까지 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회사의 피해와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Report]

지난 716, 본격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해 시행되기 시작했다. 해당 법안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발의됐다. 법안의 내용은 대표적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 회식 참여를 강요하는 것 등으로 이뤄져 있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후 한 달간 조치 요구 379건이 접수됐으며 하루 평균 16.5건의 신고가 들어온다고 한다. 가장 많은 직장 내 괴롭힘은 폭언으로 152(40.1%)에 달하는 조치 요구가 접수됐고, 다음으로는 부당업무지시(28.2%), 험담, 따돌림(11.9%)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폭행(1.3%)에 이르는 심각한 수준의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진정도 접수됐다. 앞선 결과처럼 우리나라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심각하기에 이 법안이 의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사실상 법적 강제력이나 가해자 처벌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권고 사항일 뿐 강제 규정은 아니다. 또한 괴롭힘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고 업무상 필요한 직장 내 사회생활을 괴롭힘이 아니라고 치부할 것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이는 법안의 실효성 문제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갑질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법안 시행으로 존중의 분위기를 형성해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상급 사원을 향한 악용 가능성, 괴롭힘 발생 사항의 모호성, 가해자 처벌에 대한 법적 강제성 등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 보인다. 이미 국회를 거쳐 시행된 법안인 만큼 그 의미를 다 하는 법안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노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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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o3o@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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