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속 나만의 대피처
태풍 속 나만의 대피처
  • 노효정 기자
  • 승인 2019.09.17 09:21
  • 호수 14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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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찜질방 문화

지난 주, 태푹 링링이 북상했다. 더운 여름을 역동적인 야구와 시원한 치맥으로 이겨내려 했던 기자는 우천 취소로 인해 매번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 집으로 돌아가던 찰나, 문득 태풍 때문에 밖에서 놀지 못하면 실내에서 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에서 최대한 다양하게 여름을 즐기고 싶던 기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찜질방이었다. 오락실부터 식당, 수면실까지 있는 곳. 실내에서도 여름날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기자는 곧장 찜질방으로 향했다.

찜질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인원수와 성별을 말하면 입장을 안내해주던 카운터가 이제 키오스크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표를 끊자, 옆의 점원이 필요한 용품을 건넸다. 찜질방 내부로 들어와 찜질복을 입으니 왠지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찜질방으로 올라가자 깔끔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뜨겁게 몸을 지질 수 있는 불가마방들이 한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고, 반대편에는 안마의자가 사이좋게 마주해 있었다. 좀 더 들어가면 텔레비전이 비치돼 있는 거실과 찜질방의 꽃, 매점이 자리해 있었다.

기자는 야구장으로 헛걸음하느라 지친 몸을 찜질시키기 위해 90도가 넘는 불가마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들어가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한결 건강해진 느낌이었지만, 뜨거움을 버티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채 옆의 문을 보니 위에 19도라고 적힌 온도계가 보였다. 저곳은 왜 19도인지 궁금해서 문을 열어본 순간, 냉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여기는 뜨거웠던 몸을 금방이라도 얼려버리는 얼음방이었다. 어렸을 땐 찜질방에 오면 꼭 얼음방을 놓치지 않고 들러 장난치곤 했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찜질을 마친 뒤 매점으로 가던 중 오락실을 발견했다. 게임센터에서나 볼 수 있었던 농구 게임은 물론 스틱형 오락 게임 기계와 뽑기 기계가 즐비해 있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끝에는 인기 캐릭터의 소형 놀이기구와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이 마련돼 있었다. 내친김에 예전부터 자신 있던 스틱형 게임을 한 판 해봤다. 주인공이 가장 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스틱과 버튼으로 조종하는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요즘의 고사양 게임과는 또 다른 재미가 느껴졌다. 기념으로 뽑기 기계로 인형도 하나 뽑았다. 작은 캡슐 안 귀여운 인형을 보니 뽑기에 쓴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열심히 놀고 나니 배가 고파져 식당으로 향했다. 최근 치맥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찜질방에서도 치킨과 술이 주문 가능했다. 이미 순두부찌개를 시킨 기자는 아쉬움 속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지만, 찜질방의 핵심인 매점은 포기할 수 없었다. 진부하지만 놓칠 수 없는 구운 계란과 식혜를 사서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계란을 머리로 깨보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그래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 찜질방에 오면 꼭 해야 할 양머리도 만들어 써봤다.

정신없이 찜질방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기자의 몸이 노곤해졌다. 기자는 내일도 신문 조판을 위해 아침 일찍 나서야 했기 때문에 늦지 않게 잠을 청했다. 칸칸이 나뉘어 있는 수면실은 한 명이 눕기에 매우 아늑한 크기였다. 매트를 깔고 나니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찜질방 덕분에, 거센 바람이 몰아쳐 정신없는 바깥과는 다르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날씨의 변덕을 감당하기 힘든 요즘, 실내에서 매력적인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

노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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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o3o@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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