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과 곡성…납량의 어둠을 걷다
비명과 곡성…납량의 어둠을 걷다
  • 이수현
  • 승인 2019.09.25 23:53
  • 호수 14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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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한국민속촌 공포체험
▲ 아무말 없이 기자를 노려보는 귀신들
▲ 아무말 없이 기자를 노려보는 귀신들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전국 각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공포 드라마로, 70~80년대 방영 당시 전국의 어린이들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 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한국민속촌에서 드라마 <전설의 고향>과 같은 테마로 공포체험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소 귀신이나 공포 등 무서운 분위기라면 진땀을 빼며 피하지만, 직접 지정된 야외, 실내 코스를 걸어 다니는 단일 국내 최대 규모의 워크스루(Walk Through)형 체험이라는 소식이 기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기자는 지난 15일 한국민속촌으로 향했다.


오후 4시경 한국민속촌에 도착하니 흥겨운 국악선율이 들려왔다. 정문인 대관문을 지나자 거리에는 청사초롱이 불을 밝히며 민속적 분위기를 뽐냈다. 민속촌을 반으로 가르는 지곡천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장터 옆 공포체험 매표소에 다다랐다. 공포체험 ‘귀굴’은 사전 유료 예약제로 운영되며, 밤에 살아있는 귀신과 함께 지정된 코스를 통과하는 내용의 체험이었다. 설명을 듣고 겁이 난 기자는 야심한 시각의 체험은 피하고자 저녁 8시 체험을 예매했다.

▲ 생사부를 펼치고 있는 저승사자
▲ 생사부를 펼치고 있는 저승사자

 


귀굴 예약시간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즐길 거리가 산적해 있는 놀이마을로 향했다. 입구를 통과하자 좌측에 위치한 놀이기구인 ‘귀신전’과 ‘전설의 고향’이 눈길을 끌었다. 기대한 바와 달리, 두 놀이기구는 무섭지 않았다. 기자가 지정된 장소를 지날 때 발동하도록 설정된 음향효과와 마네킹의 움직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체험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이 뒷좌석에 탑승한 사람들의 비명일 정도였다. 두 차례의 공포체험을 마친 기자는 귀굴 체험까지 남은 시간을 기다리면서 다양한 놀이기구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자 낮과는 달라진 민속촌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제 거리에는 흥겨운 국악선율이 사라지고 음산한 분위기의 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비명과 곡성으로 채워졌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걷던 중 전통복장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관광객과는 다르게 동일한 구역을 서성거리고 있던 그들을 향해 다가간 기자는 매우 놀랐다. 저승사자, 장화, 홍련 등 귀신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아무 말 없이 기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습을 담기 위한 기자의 사진 촬영 요청에도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체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민속촌의 사실적인 공포 분위기가 기자를 압도했다.

▲ 공포 테마의 시작을 알리는 환생문
▲ 공포 테마의 시작을 알리는 환생문
▲ 해가 진 민속촌의 음산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서낭당의 모습
▲ 해가 진 민속촌의 음산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서낭당의 모습

 


8시에 시작된 체험은 6명씩 조를 이뤄 시작됐다. 뿌연 연기와 보랏빛, 붉은빛 조명이 더해진 산행로는 그야말로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우리를 향해 다가와 “산 사람인가 죽은 사람인가” 물으며 칼을 휘두르던 망나니. 지붕에서 거꾸로 떨어져 탐험객의 혼을 쏙 빼놓았던 처녀 귀신. 폐가 속 득실거리는 시체들과 원귀들. 귀신들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혼비백산해 도망치기 급급했다. 이전의 민속촌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로, 마네킹이 주는 정적인 공포와 살아 숨 쉬는 귀신이 주는 동적인 공포는 천지 차이였다. 이중 가장 무서웠던 상황은 빠져나올 수 없는 폐가에 갇힌 채, 시체 사이에서 일어나 서서히 다가오는 귀신들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절망 속의 아비규환. 끝내 열리지 않는 출구를 앞에 두고 소리만 지르던 기자는 어디선가 나타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체험을 종료했다.


기괴한 음악이 나오던 한산한 민속 마을을 벗어나자 흥겨운 노래와 함께 일상이 시작됐다. 다시금 일상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며 공포체험은 막을 내렸다. 지루한 삶에서 색다른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면 한국민속촌 야간개장 공포체험을 다녀와 보는 것은 어떨까. 한밤중 호랑이와 귀신을 두려워하며 산속을 지나던 조선 시대 나무꾼의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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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hyeo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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