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즐거움의 적이다
두려움은 즐거움의 적이다
  • 유헌식(철학) 교수
  • 승인 2019.09.25 23:53
  • 호수 14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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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식(철학) 교수
유헌식(철학) 교수

 

잘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웃지 않는 사람이 있다. 왜 누구는 잘 웃고 누구는 잘 웃지 않을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잘 웃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잘 웃지 않는 편이다. 주위 환경이 사람의 일상적인 기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정 형편과 주위 환경이 여의치 않은데도 표정이 밝고 즐거운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표정이 밝다, 어둡다는 ‘걱정’의 정도와 관련된다. 걱정이 적으면 즐거워 잘 웃고, 걱정이 많으면 즐겁지 않아 잘 웃지 않는다. 그렇다면 걱정은 어디에서 올까? 실존철학의 시각에서 볼 때, 걱정은 주변 환경을 자기에게 ‘위협’으로 느낄 때 생긴다. 자기보존의 욕구는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본능이어서, 어떤 일이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위협이라고 느끼면 실제보다 부풀려 걱정하기 마련이다. 위협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경계심을 낳아 심리적 긴장을 유발한다. 긴장하고 있는 사람은 즐겁게 웃을 수 없다.


자신에게 위협적인 것은 크게 보고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작게 보려는 심리는 인간의 자기방어본능에서 기인한다. 세상에 희극보다 비극이 많은 것은 슬픈 일이 즐거운 일보다 많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은 즐거운 일보다 슬픈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일은 자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해 어차피 살고 있는 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슬픈 일은 나에게도 닥칠 수 있기 때문에 그 크기에 상관없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렇듯 생존(보존)본능은 슬픔과 즐거움의 크기를 결정해, 인간으로 하여금 슬픔은 크게 그리고 즐거움은 작게 감지하게 만든다.


인류는 두려움에서 오는 슬픔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노력은 철학자 겔렌(A. Gehlen)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이 생존을 위해 짊어지는 짐을 가볍게 만드는 일과 관련된다. 그는 ‘부담면제의 원리’를 말한다. 자신에게 위협적인 환경과의 접점을 최소화함으로써 인간은 환경의 위협에 따른 짐(부담)을 줄일 수 있다. 짐이 가벼워지면 위험에서 멀어져 두려운 마음이 줄어들어, 결국 즐거운 마음의 영역이 넓어진다. 두려움에서 벗어난 안전지대는 즐거움의 실존적인 조건이다.


위험을 크게 보려는 인간의 심리를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심리는 삶의 즐거움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큰 슬픔은 작게 볼 수 있어야 하고 작은 즐거움은 크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위협에 몸을 사리지 않고 담대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을 덜 느낄수록 즐거움의 공간은 더 커진다. 겁이 많은 사람은 즐거울 수 없다. ‘겁’이란 환경을 위협으로 느끼는 데에서 비롯한다. 환경 자체가 위협적이지 않은데도 위협으로 느끼거나 실제 위협의 크기에 비해 더 크게 위협을 느끼는 태도는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빼앗는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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