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식탁 위의 행복을 조리다
에피쿠로스, 식탁 위의 행복을 조리다
  • 이준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25 17:14
  • 호수 14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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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피쿠로스 학파
▲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양미리
▲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양미리

 

<카모메 식당>은 소위 소울푸드열풍을 일으킨 영화다. 영화는 시종일관 단순하고, 차분하다. 사치에라는 일본인 여성이 핀란드 헬싱키의 어느 길모퉁이에 식당을 연다. 이름은 카모메 식당. 한동안 손님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며 활기를 찾아간다. 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를 묻는 일본만화 마니아,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오게 됐다는 미도리 등 식당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맛있는 음식과 함께 풀어가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재미있는 건 카모메 식당의 대표 메뉴가 오니기리, 그러니까 주먹밥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주먹밥일까? 여기에 사치에는 이런 답을 내놓는다. “오니기리야 말로 일본인의 소울푸드이기 때문이에요. 일찍 어머니를 여윈 저는 가사 일을 도맡아야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꼭 1년에 2번 저를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주셨어요. 비록 아주 크고 볼품은 없었지만 그건 정말 너무나 맛있었죠.”

사치에의 아버지가 주먹밥을 식탁에 올렸다면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아버지께선 겨울마다 양미리 조림을 식탁에 올리셨다. 양미리는 타지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구워먹어도, 뼈째 튀겨먹어도, 탕을 끓여먹어도 진한 고소함을 내뿜는 생선이다. 특히 살짝 말린 것을 간장에 조려 내면 겨우내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고마운 생선이기도 하다. 갓 지은 밥에 방금 조린 통통한 양미리를 한 조각 얹어 입에 넣으면, 짭쪼롬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밥과 어우러져 장어초밥 부럽지 않은 즐거움이 완성된달까.

 

빵과 물만 있다면 신도 부럽지 않다

지난 2500년간 방탕한 인물로 오해받은 에피쿠로스도 사실은 이런 소박한 행복을 아는 사람이었다. 정원 공동체를 구성해 생활한 그는 하루에 음식을 장만하는 데 1므나(화폐단위)의 돈도 쓰지 않고, 포도주 4분의 1리터만으로도 만족하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그는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절제와 축소를 통해 쾌락을 얻을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욕망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인 필수적인 욕망은 의식주처럼 생활의 기본적인 욕구를 말하며, 두 번째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은 명품이나 쓸데없이 큰 집에 대한 탐욕 같은 것을 말한다. 마지막 공허한 욕망은 인기나 명예 등에 대한 욕심을 일컫는 말이다. 이중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필수적인 욕망뿐이다. 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고, 한 번 채워지면 더 이상 고통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욕망을 줄이고 소박한 삶을 성취한다면 고요한 마음의 상태인 아타락시아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에피쿠로스가 욕망의 절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한 것은 마음의 평화가 삶의 목적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는 이를 위해 욕망의 절제는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기존의 종교적 사유를 거부하며, 우리 모두 죽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 여겼다고 알려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은 원자로 돼 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자신의 철학에 받아들인다. , 우리의 몸과 영혼은 원자로 돼 있어 사후에는 모두 분해돼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에피쿠로스로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소비를 통해 유지된다.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 불필요한 제품을 사게 하고, 또다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며, 사람들의 욕망을 더욱 자극해 더 큰 소비를 이끌어 내는 악순환을 조장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욕망을 강요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과연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그의 대답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가 보기엔 를 넘어 우리를 생각할 수 있다면, 올바른 방법으로 현재를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행복을 위한 충분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상태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밤, 당신도 당장 그의 철학을 실천할 수 있다. 간이 알맞게 밴 양미리 몇 점 앞에 놓고 친구와 얼큰하게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여유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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