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로 독립을 외치다
시와 소설로 독립을 외치다
  • 유정호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9.25 23:53
  • 호수 14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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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심훈(1901~1936)
▲ 그날이 오기를 꿈꿨던 심훈 선생 동상
▲ 그날이 오기를 꿈꿨던 심훈 선생 동상

일제강점기는 어느 때보다도 유독 뛰어난 문인들이 참 많았다. 이 중에는 훌륭한 문학적 소질로 민족을 팔아먹는 친일 문학가도 있지만, 일제에 저항하는 문학작품을 쓰며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심훈과 같은 민족 문인들이 더 많았다.


심훈은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인물이었다.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언론인이면서 배우와 영화감독으로도 활약했다. 특히 심훈의 대표작품으로 우리가 학창 시절 배웠던 『그날이 오면』과 소설 『상록수』가 있다. 『그날이 오면』은 우리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심훈의 굳은 의지가 담겨 있고 『상록수』는 일제에 의해 피폐화돼가는 농어촌의 현실을 알리면서, 청년들이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


이처럼 항일의지를 담은 작품을 썼던 심훈은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남달랐다. 3학년 때에는 일본 교사가 노골적으로 한국인을 비하하고 모욕하자, 수학 시험지를 백지로 내며 저항했고, 4학년이 되던 1919년에는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8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수감돼 있는 동안 독립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준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에서 심훈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보여주었다.


“마음을 합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생사를 같이할 것을 누구나 맹세하고 있으니까요. 아아! 육체의 고통을 뛰어넘는 정신의 맑음이여.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때마다 눈물겨워 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출소 이후 중국으로 건너간 심훈은 이회영, 신채호, 이동녕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인을 위로해주고, 독립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심훈은 기자로서 일제의 만행을 밝히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1926년 순종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통곡 속에서』를 발표했고, 1927년에는 『먼동이 틀 때』를 집필, 감독과 주연을 맡아 흥행에 성공했다. 1930년에도 『그날이 오면』과 장편소설 『불사조』를 집필하며 저항 작품을 계속 써나가자, 일제는 심훈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결국, 심훈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부모님이 계신 충남 당진으로 내려갔으나 일제에 대한 저항 문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1935년 소설 『상록수』를 발표하고, 1936년에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에 감격해 쓴 『오오. 조선의 남아여』 등 일제에 저항하는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1936년 안타깝게도 장티푸스에 걸린 심훈은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만약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심훈은 광복하는 그날까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용기와 희망을 주는 작품을 계속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에 답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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