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니의 열병
첫 사랑니의 열병
  • 박예진 기자
  • 승인 2019.10.22 16:42
  • 호수 146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예진 취재기자
박예진 취재기자

사랑니가 났다.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 밤잠까지 설쳤지만 기자는 그 사랑니를 그대로 방치했다. 치과 특유의 냄새조차 싫어하는 기자에게 아파서 건드리지도 못하는 사랑니를 뽑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치하면 염증이 구강 전체로 퍼질 수도 있다는 의사의 조언에 망설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며 그날로 사랑니를 뽑아버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아팠지만 뽑고 나니 사랑니는 더 이상 기자의 밤을 괴롭히지 않았다.


부은 볼을 붙잡고 누우니, 문득 이 사랑니가 기자의 이루지 못한 꿈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내내 언론인을 꿈꿨던 기자는 대입이라는 현실 앞에서 결국 모두가 가는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특수교육과에 원서를 넣고 돌아서면서 마음 한 켠이 쓰라렸지만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환상과 열정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었고, 설렘조차 없는 황량한 그곳에 적응하려 애쓰는 기자의 모습은 마치 맞춰지지 않는 퍼즐조각 같았다.


평범하고도 무료한 하루를 보내던 중 우연히 단대신문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포스터 속 ‘그대의 열정을 단국의 역사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 순간, 기자가 앞으로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판단하기까지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원과 면접을 거쳐 기자가 됐고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신문사와 동고동락하고 있다. 지난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강원랜드와 전당포를 오갔던 르포부터 마감까지 인터뷰 답안을 받지 못해 기자를 당황하게 했던 보도 취재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을 보며 주변 이들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기자에게 신문사란 사랑니를 뽑는 것과 같았다. 지레 겁먹고 방치했던 사랑니를 뽑아버리고 느꼈던 그 날의 해방감처럼, 신문사 활동은 식어버린 열정에 불을 지폈고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기자는 그제서야 제 자리를 찾았다.


기자의 바이라인에는 ‘billionaire’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억만장자와 다름없다고 생각해 지은 것이다. 사랑하는 일을 좇는 건 사랑니를 뺄 때처럼 힘들지만 그렇다고 방치한 채 도전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 인생을 전부 흔들지도 모른다. 작은 사랑니 하나가 입안을 온통 헐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민만이 가득하던 기자의 새벽은 이제 쉴 새 없는 타자 소리로 가득하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새벽, 불 꺼진 방에서 희미한 노트북 불빛에만 의존해 기사를 써 내려가는 건 무척이나 고되지만, 그 시간은 기자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그래서 기자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첫 사랑니의 열병을 지독히 앓았던 기자는 이젠 두 번째 사랑니를 마주할 때 당당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다.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방치하는 고통이 뺄 때의 아픔보다 클테니까.

박예진 기자
박예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