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덕후’가 되자
우리 ‘덕후’가 되자
  • 김평호(커뮤니케이션) 교수
  • 승인 2019.11.06 10:22
  • 호수 1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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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호(커뮤니케이션) 교수
김평호(커뮤니케이션) 교수

 

 

오타쿠. 요즘 사용빈도가 약간 뜸해진 듯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단어. 사전은 그 뜻을 이렇게 풀이한다.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 초기에는 만화 팬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특정분야의 전문가라는 의미로까지 발전했다. 영어식으로 하면 ‘너드 nerd’, ‘긱 geek.’ 우리 식으로는 ‘덕후.’


학생들에게 내가 자주 강조하는 것은 ‘덕후’가 되라는 것이다. 자기가 관심을 두고 있는, 또는 좋아하는 분야를 정하고, 적어도 그 분야에서만큼은 ‘아마츄어지만 프로에 못지않은 고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펙’ 따위는 유행하는 표현을 쓰자면 ‘개나 줘 버리고…’ 그렇다고 예를 들어 성적이 중요치 않다는 뜻은 아니다. 통상적 의미의 스펙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쌓아 올린 내공이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절, 스펙 쌓기에도 바쁜데 내공이 웬말이냐고 들이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두는 것이 희망진로와 연관된 분야나 주제일텐데, 그 경우 스펙 쌓기와 내공 다지기 사이에 갈등이 있을까? 그럼에도 만약 갈등이 있다면 당연히 내공을 택해야 한다. 왜? 스펙은 사라지는 것이고 내공은 오래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익을 예로 들어보자. 졸업에도 취업에도 거의 필수가 되버린 토익. 참고서 십 수 권보고 학원 몇 군데 다닌 끝에 드디어 999점. 꿈의 토익 성적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받은 성적으로 ‘드디어 우리 회사에 필요한 영어인재!’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해서 받은 점수로 미국이나 영국에서 능숙하게 일하며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은 영어고수지 토익고수가 아니다. 영어고수는 반드시 토익고수지만, 토익고수가 반드시 영어고수일 수는 없다.


한편 덕후의 삶은 풍성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많은 얘깃거리와 경험을 쌓고, 다방면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덕후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배움의 폭과 깊이가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경지 또한 넓어진다. 전문용어로 하면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이 두터워지는 것이다. 사회자본은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풍성하고 행복한 삶의 필요조건이다.


또 하나.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 가장 큰 물음은 ‘인간은 그럼 무엇을 할까’이다. 그런 질문에 가장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덕후다. 그런 점에서 덕후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재상이다. 우리 모두 덕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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