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늪을 통과한 기쁨이 진짜다
슬픔의 늪을 통과한 기쁨이 진짜다
  • 송정림 작가
  • 승인 2019.11.06 22:36
  • 호수 1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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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
▲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

 

인간은 모두 시험관에서 대량생산되고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나뉜다. 각 계급에 따라 산소와 영양분을 조절한다. 산소를 덜 공급받은 하층 계급의 태아들은 지능도 체격도 열등한 상태로 태어난다.

고민이 있을 때는 소마라는 약을 먹으면 거뜬히 해결됐다. 그들은 약을 찬양한다.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미한 시간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면 항상 소마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유쾌한 소마가 있지.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1그램. 호사스런 동방으로 여행하고 싶으면 2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 잠자고 싶으면 3그램. 그곳에서 돌아오면 시간의 터널을 빠져 저쪽 편에 와 있게 되는 거야.”

이런 시대에도 이단자는 있다. 레니나와 버나드 마르크스가 그들이다. 버나드는 레니나와 뉴멕시코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여행을 간다. 보호구역 안에서는 아직도 사람이 아기를 낳는다는 안내원의 말에 레니나는 질겁한다. 그곳은 문명사회와는 접촉이 없는 곳이라서 아직 결혼, 가족, 미신, 기독교, 조상의 관습이 남아있다는 것.

인디언 복장을 했으나 머리는 노랗고 눈은 연푸른색이었고, 피부는 그을렸으나 백색인 청년이 말을 걸어온다. 그의 이름은 존이었다. 존과 그의 어머니 린다는 어떤 남자와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 낙오됐다고 했다. 린다는 추하게 늙어있었지만, 문명사회에 대한 추억과 동경을 품고 있었다. 버나드는 존과 린다를 문명세계로 데려가기로 한다. “오오, 멋진 신세계여! 그토록 아름다운 인간들이 살고 있는 멋진 신세계여! 지금 바로 떠나요!”

하지만 존의 어머니 린다는 소마를 하루에 20그램이나 먹고, 호흡곤란을 일으켜 죽는다. 충격을 받은 존은, 소마를 배급받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상자 속에 든 약을 한 줌씩 꺼내 던지며 열변을 토한다. “여러분은 노예 상태가 좋습니까?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인간다움과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단 말입니까?”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오, 멋진 신세계여!”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51장에 나오는 대사이며, 존이 신세계를 갈망하며 외친 그 한 마디다. 그러나 이 소설은 멋진 신세계가 결코 멋지지 않다고, 절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해준다.

행복은 자동차처럼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일사불란하게 통제되는 조직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슬픔의 늪을 통과한 기쁨이 진짜고, 불행의 그늘을 통과한 행복이 진짜고, 실패의 터널을 통과한 성공이 진짜고, 죄악의 유혹을 통과한 양심이 진짜고, 어려움의 도랑을 건넌 실현이 진짜다.

지금 실패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면, 질병과 죽음의 공포로 두 손을 모은다면,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면, 그리움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꼭 이루고 싶은 꿈 때문에 마음을 졸인다면, 그렇다면 이곳이 바로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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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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